달마어록 -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목탁소리 총무처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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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N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1 달마어록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무릇 도에 들어감(入道)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요점만 말하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입과 행입이 그것이다. 첫째는 이치로 들어감(이입 理入)이요, 둘째는 수행으로 들어감(行入)이다.


1. 이입 (理入) 

이치로 들어간다는 것(理入)은 소위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근본(宗)을 깨닫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동일한 참성품을 가졌으나 객진번뇌와 망상에 덮여서 (참성품이) 나타나지 못할 뿐이다”는 가르침을 깊이 믿는 것이다. 

망상을 버리고 참성품으로 돌아가려면 벽관(壁觀)에 고요히 머물러서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한 가지로 평등하다.”라고 관찰하여 여기에 굳게 머물러서 마음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다시 글로 된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곧 바른 이치와 암암리에 부합하는 것이니 아무런 분별도 없고 고요하여 함이 없다. 이것을 이름하여 ‘이치로 들어간다(理入)’고 말한다. 


2. 행입(行入) - 사행(四行) 

수행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소위 네 가지 수행이니 기타 나머지의 모든 수행은 다 이 가운데 들어있다. 


무엇이 네 가지 수행인가? 

첫째는 

원망을 버리는 수행(보원행 報冤行),

둘째는 

인연에 따르는 수행(수연행 隨緣行),

셋째는 

구하는 것 없는 수행(무소구행無所求行),

넷째는 

법에 따르는 수행(칭법행 稱法行)이다.

(1) 보원행 

무엇이 보원행(報冤行)인가? 

도를 닦는 수행자가 고통을 받을 때는 마땅히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과거의 무수겁 가운데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아 모든 육도의 생명을 받아 유랑하면서 수많은 원한과 증오를 일으켜 위해를 끼치기를 한량없이 해왔다. 지금은 비록 이런 악을 범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모두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가 익은 것이니 천신이 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다. 이 고통을 달게 감수하여 원망하거나 다투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이 생겨날 때 바른 이치와 상응하여 원한을 녹이고 도에 나아가기 때문에 보원행(報冤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2) 수연행(隨緣行) -인연에 따르는 행 

중생이 ‘나’가 없으며 또한 업을 인연하여 굴러서 고락(苦樂)을 받는 것이 모두가 다 연(緣)에 따라 생긴 것이다. 만약 훌륭한 과보인 영광과 명예 등의 일을 얻을 때는 “이것은 과거의 업으로 인하여 지금 얻은 것이다. 연(緣)이 다하면 다시 없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기뻐할 것인가?”하고 생각한다. 

얻고 잃음을 모두 연(緣)에 따라 맡겨서 마음으로는 늘어남과 줄어듬이 없어, 기쁨의 바람에 움직이지 않고 잠잠히 도(道)에 따른다. 그러므로 수연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3) 무소구행 (無所求行)

세상 사람들이 오랫동안 미혹하여 곳곳에 탐내고 집착하는 것을 구함(求)이라고 이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성품을 깨달으니 이치로서 속세를 저버리고 마음이 편안하여 아무 것도 함이 없다. 형체를 따라 운전하되 삼라만상이 다 공(空)이라 아무 것도 바라지도 않고 즐기는 것이 없다. 

공덕(功德)과 흑암(黑暗)이 항상 서로 따르고 쫓는다. 삼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마치 불타는 집과 같고, 몸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라, 어느 누가 편안하겠는가? 

이것을 요달하기 때문에 모든 육도의 존재를 버리고 생각을 쉬어 구하는 것이 없다. 

경에 이르되 “구함이 있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고, 구함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구함이 없는 것이 참으로 도의 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구하는 것이 없는 수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4) 칭법행 (稱法行)

자성이 청정한 이치를 법이라고 한다. 이 도리를 믿고 이해하면 모든 상(相)이 공(空)한지라 번뇌에 물듬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이것도 없고저것도 없다.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때를 떠났기 때문이다. 법에는 ‘나’가 없으니 ‘나’의 때를 떠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능히 이 도리를 믿고 이해하여 마땅히 법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 

법 자체에는 ‘아낌’이 없으니 보시 바라밀로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되 마음에 아낌이 없다. 삼공(三空)의 도리를 통달하여 의지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오직 아낌의 때(垢)를 제거하기 위하여 중생들에게 보시하되 상(相)을 취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이고 다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또한 능히 깨달음의 도를 장엄한다. 보시바라밀이 이미 이런 것과 같이 나머지 다섯 바라밀도 역시 이와 같다. 망상을 없애기 위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지만 아무 것도 행한 바가 없다. 이것을 칭법행이라고 말한다.


#2  스님의 강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자가 입도하며 행해야 할 네 가지 행 중,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이 보원행입니다. 


보원이란 곧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그 괴로운 일로부터 마음을 돌려내느냐 하는 일입니다. 

모든 세상 일들은 내가 스스로 과거에 지었던 인과응보임을 알고, 즉 자기가 지은 업에 대해 인과의 댓가로 온 일들임을 알기에, 그렇게 생겨난 세상일에 대해 다른 누구나 다른 무엇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 곧 보원행입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도에 들어간 자들은 세상 탓을 하지 않게 됩니다. 누구 누구 때문에, 세상 때문에, 제도 때문에 힘들다 하는 탓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일체가 마음 하나이므로  '나'와 '너'가 주객으로 나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도에 들어간 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보원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은 어떠한 괴로움을 당했을 때 남의 탓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힘의 원천은 자기 자신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세상을 나와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둘로 나누지 않고 나와 세상이 궁극에 하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온전히 자기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공부의 기본 토대가 됩니다."


수연행이란 인연에 순응하는 행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따라 조건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일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연행은 '나'라는 것이 따로 없음을 잘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연기가 곧 무아임을 알고, 나 또한 인연따라 조건따라 생겨난 것임을 알아, 모든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연에 따라 생겨나는 것임에 밝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연행을 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모든 일에 하되 함 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인연에 맡기고 받아들이며 순응합니다. 

이렇게 보원과 수연으로 수행하는 공부인들이라면 더 이상 추구하거나 집착하거나 갈애하는 것들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이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일도 있고 이루고자 하는 원력도 세우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하되 함 없이 행하므로, 되고 안되고에 상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되 함 없이 하다보면, 인과와 연기로 일어나는 이세상의 일들은 그 어떤 것도 손에 쥘 것이 없음을 잘 알게 되며, 그 일들에 사로잡혀 좋거나 괴로워 할 '내'가 없음에 밝고 밝아지므로 추구심이 내려집니다. 


바라는 바대로 이루어지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또 그대고 좋을 수 있음을 알고 행하므로, 그 어떠한 일을 도모하더라도 집착하거나 욕심내는 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마음을 내어 최선을 다해 임하지만, 딱히 욕심내어 추구하는 바가 없으니 늘 가볍습니다. 잘 안되면 어쩌나 하는 큰 걱정 근심이 없으므로 늘 편안합니다."


그렇게 나와 너가 따로 없음에, 모든 세상 일들은 인연을 따라 흐름에 통연명백해져 더 이상 추구하거나 집착할 것이 없어질 때, 그러할 때 진정한 수행자들은 비로소 '아낌'없는 보시행을 하며 깨달음의 도를 따라 살게 됩니다. 칭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

이 마음공부에 발심하고 이 공부를 시작하여 꾸준히 이렇게 법문을 가까이 하며 점점 가벼워질 때 여러분들은 이미 보원, 수연, 무소구, 칭법을 여실히 행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 모두가 여법한 수행자이며 이미 한 분 한 분의 스님이며... 이 자리에서 곧장 한 분의 부처님입니다. 그것이 곧 진리입니다. 

[법상스님] 


BTN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법문 말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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