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법상스님의 황매사 나들이
스님께서는 지난 토요일, 경남 산청의 황매사를 다녀오셨다고 하십니다.
그 곳의 주지이시며 서울 가야산 선원의 선원장이신 효담스님을 만나뵙고 오신 스님께서는 일요법문 중 어른 스님과 나누신 공명의 말씀들을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2 우리 스님의 말씀
어제 이 공부를 아주 오래 하신 어른 스님을 만나뵙고 왔다. 저와는 공부해 오신 과정도, 은사스님도 다른 분이시며, 그 스님께서는 저를 잘 알지도 못하셨다. 그저 어떤 스님이 요즘 열심히 한다더라 하는 정도로만 저를 아셨을 뿐, 제가 어떤 강의를 하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펴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던 분이셨다.
그럼에도 가서 이렇게 말씀을 나누며 듣다 보니,참으로 이럴 수가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바로 이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 한마음이셨다. 똑같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 어른 스님의 말씀이 곧장 저와 같은 마음이셨다.
"선불교가 후대로 넘어가면서 말과 설명이 사라지고 수행하는 방편으로 천착했지만, 그것은 공부할 준비가 다 되어있던 후기 엘리트 공부인들을 제접하여 공부를 전할 때나 효과가 있었을 이야기다.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공부를 전해서는 효과가 없다. 풀 수있는 데 까지 자상하게 다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초기 선에서는 오히려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자상하게 해설하여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지 않았는가? 임제, 조주, 마조와 더불어 이 대주혜해 등의 선사들이 가르침을 펼치던 시절의 방편이 바로 요즘의 사람들에게 먹히는 방편이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그 어른 스님께 반문을 드려보았다.
"큰스님, 그래도 선에서는 너무 자상하게 풀어서 설하면 안된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송나라 때로 가면 문자선으로 치우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은 또 어찌 보십니까?"
어른 스님께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런 가르침이 필요했던 엘리트 수행자들 얘기이지, 지금 공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지금은 모든 상황이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언어의 방편을 이해해 내는 범위가 달라졌으며 지금 사람들은 이해력과 어휘 방편력이 말할 수 없을만큼 높다. 그러니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여 이해시키지 못할 이유가 하나 없는 공부다. 이 공부가 그렇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안목을 갖춘 요즘 공부인들이라면 금방이라도 이 공부를 눈치챌 수 있으며,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은 머리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어야 이 공부를 해낸다.
그냥 무조건 이해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화두 들어라, 책 보지마라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이것을 스승이 끝까지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켜 준다면 금방 알아차리고 확인할 일 아닌가?"
이렇게 말씀하시며 지눌스님을 언급하셨다. 지눌스님의 법을 꼭 공부해야 한다 하셨다. 지눌 스님께서 말씀하신 "해오"라는 것이 지금 시대의 포교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제가 <수심결> 강의를 한 것도 모르시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야말로 마음껏 공명하며 함께 했던 자리였다.

"당연히 잘 설명을 하고 이해시켜 먼저 "해오"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이후 진정으로 "나"가 사라지는 그 한 턱을 넘어서는 공부를 하는 것은 사람들 저마다의 공부 인연을 따라 스스로 돌파해 가야하는 것이다.
끝까지 이 공부를 돌파해 나가는 것이야 자신의 발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스승이라면 끌어줄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 해 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스승이라면 그렇게 끌어 줄 수 있는 법문을 해야한다. 이제는 스승의 자상한 법문으로 충분히 많은 대중들이 깨어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며 , 그렇게 공부를 해내는 대중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 어른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 된다.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여전히 "내"가 공부를 하게 되는 단계도 일정기간 거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쉼없이 계속 해 나가다보면... 마침내는 그 한 턱을 탁! 넘어서는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공부하면 된다.
- 법상스님의 대원정사 일요법회 법문 말씀 중



황매사 효담스님께 감사의 합장 삼배를 올립니다
선향지 정리
#1 법상스님의 황매사 나들이
스님께서는 지난 토요일, 경남 산청의 황매사를 다녀오셨다고 하십니다.
그 곳의 주지이시며 서울 가야산 선원의 선원장이신 효담스님을 만나뵙고 오신 스님께서는 일요법문 중 어른 스님과 나누신 공명의 말씀들을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2 우리 스님의 말씀
어제 이 공부를 아주 오래 하신 어른 스님을 만나뵙고 왔다. 저와는 공부해 오신 과정도, 은사스님도 다른 분이시며, 그 스님께서는 저를 잘 알지도 못하셨다. 그저 어떤 스님이 요즘 열심히 한다더라 하는 정도로만 저를 아셨을 뿐, 제가 어떤 강의를 하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펴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던 분이셨다.
그럼에도 가서 이렇게 말씀을 나누며 듣다 보니,참으로 이럴 수가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바로 이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 한마음이셨다. 똑같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 어른 스님의 말씀이 곧장 저와 같은 마음이셨다.
"선불교가 후대로 넘어가면서 말과 설명이 사라지고 수행하는 방편으로 천착했지만, 그것은 공부할 준비가 다 되어있던 후기 엘리트 공부인들을 제접하여 공부를 전할 때나 효과가 있었을 이야기다.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공부를 전해서는 효과가 없다. 풀 수있는 데 까지 자상하게 다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초기 선에서는 오히려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자상하게 해설하여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지 않았는가? 임제, 조주, 마조와 더불어 이 대주혜해 등의 선사들이 가르침을 펼치던 시절의 방편이 바로 요즘의 사람들에게 먹히는 방편이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그 어른 스님께 반문을 드려보았다.
"큰스님, 그래도 선에서는 너무 자상하게 풀어서 설하면 안된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송나라 때로 가면 문자선으로 치우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은 또 어찌 보십니까?"
어른 스님께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런 가르침이 필요했던 엘리트 수행자들 얘기이지, 지금 공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지금은 모든 상황이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언어의 방편을 이해해 내는 범위가 달라졌으며 지금 사람들은 이해력과 어휘 방편력이 말할 수 없을만큼 높다. 그러니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여 이해시키지 못할 이유가 하나 없는 공부다. 이 공부가 그렇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안목을 갖춘 요즘 공부인들이라면 금방이라도 이 공부를 눈치챌 수 있으며,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은 머리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어야 이 공부를 해낸다.
그냥 무조건 이해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화두 들어라, 책 보지마라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이것을 스승이 끝까지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켜 준다면 금방 알아차리고 확인할 일 아닌가?"
이렇게 말씀하시며 지눌스님을 언급하셨다. 지눌스님의 법을 꼭 공부해야 한다 하셨다. 지눌 스님께서 말씀하신 "해오"라는 것이 지금 시대의 포교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제가 <수심결> 강의를 한 것도 모르시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야말로 마음껏 공명하며 함께 했던 자리였다.
"당연히 잘 설명을 하고 이해시켜 먼저 "해오"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이후 진정으로 "나"가 사라지는 그 한 턱을 넘어서는 공부를 하는 것은 사람들 저마다의 공부 인연을 따라 스스로 돌파해 가야하는 것이다.
끝까지 이 공부를 돌파해 나가는 것이야 자신의 발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스승이라면 끌어줄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 해 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스승이라면 그렇게 끌어 줄 수 있는 법문을 해야한다. 이제는 스승의 자상한 법문으로 충분히 많은 대중들이 깨어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며 , 그렇게 공부를 해내는 대중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 어른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 된다.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여전히 "내"가 공부를 하게 되는 단계도 일정기간 거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쉼없이 계속 해 나가다보면... 마침내는 그 한 턱을 탁! 넘어서는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공부하면 된다.
- 법상스님의 대원정사 일요법회 법문 말씀 중
황매사 효담스님께 감사의 합장 삼배를 올립니다
선향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