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어록41≫  모든 괴로움은 자기 생각이 만들 뿐

목탁소리 대원정사 총무처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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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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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어록41≫
모든 괴로움은 자기 생각이 만들 뿐



#1 몸이 아파 힘들고 괴로울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몸이 아프고 병도 생겨 힘들고 괴로운데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를 물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이러한 질문은 벌써 아픈 나와 병을 둘로 나누어 놓고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그 상황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다 받아들이며 겪어주는 불이법에서 멀어진 것이다.

삶에서 부딪치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지혜로운 중도의 길은 회피하거나 투쟁하는 양 극단을 떠나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아픔이 오면 아픔이 오도록 그저 내버려 두라. 아픔이 내 존재 위를 스치고 지나가도록 그저 놔두고 다만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스쳐지나 가는지를 묵연히 바라보기만 하라.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어 놓고 나면 아픔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지만,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지 않고 내 존재의 일부분으로, 내 삶의 하나로써 가만히 포개어 놓고 나면 더 이상 아픔과 싸울 필요도 도망 칠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픔과 괴로움과 좌절을 다루는 중도적인 수행 방법이다.

우주법계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통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문제가 생기는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업장의 해소를 위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이 또한 흘러가는 과정인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다 해야겠지만, 그 병이 내게 찾아왔으므로 문제라고 생각하며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 실은 이 자리에서는 애써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심각해 할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문제가 생겨날 때,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라. 그것을 '문제'라고 낙인 찍고 있는 그 순간을 발견해 보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바로 그 순간, 미소를 지으며, '이것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고 왔을까?' 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여 보라.

바로 그러한 습관적인 문제화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의 '대 전환의 순간'... 당신의 내면은 그 아픔을 기꺼이 웃으며 맞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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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조어록41≫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도에 계합할 수가 있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나는 도와 계합했던 적이 없다."


스님의 강설

도가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어서, 내가 그 도와 계합해야 한다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다. 깨달아야할 도와 깨달을 내가 따로 있을리 없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깨달았다는 생각이 없다. 부처에겐 부처가 없고 법에는 법이 없다. 그 어떤 것과도 계합할 것이 없고 그 어떤 것도 붙을 자리가 없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러자 마조가 별안간 그 스님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후려치지 않는다면, 제방에서 나를 비웃을 것이다."


스님의 강설

마조스님은 한 대 때리는 것으로 이미 법을 드러냈다. 이 자리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말로 설명을 어떻게든 하고 나서도 참 찜찜하다. 말로 뱉았다 하면 허물이 될 것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전부이니 또 다시 말로 도를, 법을 설하는 것이 참 웃기는 일이다.

마조스님은 이 스님을 한 대 후려치는 것으로 법을 보였으며, 또한 이 스님의 분별심을 경책하는 것이기도 하다.





탐원스님이 행각하고 돌아와 마조스님 앞에서 원 상을 하나 그린 뒤에, 그 위로 올라가 절을 하고는 섰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너는 부처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냐?"

"저는 눈을 비벼서 헛꽃을 만들 줄 모릅니다."

"내가 너만 못하구나."

이 젊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의 강설

우리 중생들이 늘 하는 일이 바로 눈을 비벼 헛꽃을 만드는 일이다. 자기 생각을 늘 굴려 자기 분별을 만들어놓고서는 그것을 진짜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 헛꽃(안중화)에 가려 제대로 눈앞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이렇게 헛꽃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자기 생각으로 허공꽃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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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 마조스님 앞에서 네 개의 획을 그었는데, 한 획은 길고 세 획은 짧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하나는 길고 세 개는 짧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구(四句) 백비(白非)를 떠나 대답해 주십시오."

그러자 마조스님은 땅에다 선 하나를 긋고서 말했다.
"길다 짧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그대에게 답하였다."

스님의 강설

이 도란 길고 짧은 것이 없는, 둘로 셋으로 나뉘어 분별되는 것이 아닌, 불이법으로서 하나임을 보여주시고자 마조스님은 하나의 선을 그려 답해 보였다고 굳이 말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만,

이러한 어록들을 읽고서 해석하고 분석하여 그 뜻을 알아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분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한 획을 그리기도 전에 이미 법은 드러났으며, 무엇을 그리던 상관이 없다. 정해진 의미가 따로 있을리 없다.

그냥 이럴 뿐이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우리 삶 또한 그냥 이럴 뿐이다. 온갖 분별과 상을 내리고 나면,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따로 없다. 정해진 심각한 특별한 의미도 없다. 그냥 이럴 뿐.

꽃이 피면 필 뿐
꽃이 지면 질 뿐
그저 이럴 뿐!

- 법상스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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