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법상스님 - 백중 특별법문≫
#1 백중과 천도의식의 참된 의미
음력 7월 15일 오늘은 백중(우란분절)이다. 오늘은 백중을 맞아 백중기도와 천도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새기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한 번 새겨 보고자 한다.
○ 천도재의 참된 의미
참된 천도란 자기를 구제하는 것이다. 진정한 천도의 의미는 돌아가신 영가님만이 알고 가셔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이 모두 알고 새겨야 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죽고 나서는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므로 막연하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나의 죽음도 전혀 두렵지 않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도 좀 더 지혜롭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
불교의 5대 명절- 석가탄신일,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 우란분절(백중) - 중 유일하게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목련존자와 관련된 백중에 대해 알아보자. 우란분절(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이라 하여 백 가지 종류의 열매와 곡식의 씨앗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이러한 풍성한 음식을 차려 돌아가신 영가님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낸다는 의의를 가지기도 한다.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그 어머니의 영혼이 아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구원 천도하고자 부처님께 청원하여 천도재를 지내게 된 일에서 유래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이라 하여 돌아가신 분들을 천도하는 날로 기리고 있다.
○
영가들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는 관음시식 등을 포함한 천도의식에 담긴 말씀들은 모두 선(禪)에서 비롯된다.
선사스님들의 법문 말씀이거나, 경전의 내용 등을 담아 전하여, 평생을 분별과 생각과 망상 속에서 허망하게 살다 죽은 영가들에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생사가 본래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자 하는 것이 천도의식의 참된 의미인 것이다.
보통 49재의 초재와 막재 때는 하는 관욕의식 역시, 영가를 목욕시킴으로써 억겁동안 가졌던 허망한 망상 분별의 때를 벗기고 씻어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우리는 돌아가신 영가들을 보고 귀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영가들이 귀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바로 귀신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이 몸이, ‘나’와 ‘너’가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이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나’라고 착각하며, 나와 또 다른 수많은 ‘너’를 만들어 내가며 살고 있지 않은가?
오랫동안 너무나 굳게 진짜라고 믿어왔던 그 생각, 그 망상 분별이 바로 귀신이다. 이 생각과 망상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그 모든 생각을 잠시 비우고 그 모든 것을 실로 그냥 관하게 되면, 모든 것이 그저 왔다 가는 것들일 뿐임을 여실히 알게 되지 않던가? 이렇게 왔다 가는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허망한 것이었음을 살면서 여지껏 보아왔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 지금 진짜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바로 보라는 말이다. 진짜 진실에 관심을 두고 진리를 보고자 하며 매 순간 눈앞을 살고자 한다면, 이 몸과 마음과 생각 따위에 관심을 갖게 될 리가 없다.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짜 진리를 찾고자 해야 한다. 나다, 너다 하며 둘로 나누는 그 허망한 분별, 생각에 속아 가짜를 진짜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그 귀신의 살림살이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분 각자가 만들어 낸 자기만의 허망한 분별로 가득 찬 가상현실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이 천도재는 이와 같이 살아있는 동안 진실이라 믿고 살아 온 허망한 분별의 세상은 모두 망상이었음을, 내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음을 맞았다는 그 생각이 모두 진실이 아님을 영가에게 알리고자 하는 데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2 천도의식의 영가 법문
이러한 의미가 관음시식 중의 영가 법문인 ‘착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영가 천도의식의 착어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있다.
(1) 착어
영원담적(靈源湛寂)
신령스러운 근원은 맑고도 고요하며,
무고무금(無古無今)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고,
묘체원명(妙體圓明)
묘한 본체는 둥글고도 밝으니
하생하사(何生何死)
어찌 태어남이 있고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담적원명저일구마(湛寂圓明底 一句麽)
‘항상 고요하고 뚜렷이 밝다’하는 그 하나의 일구(一句)를 알겠는가?
부앙은현현(俯仰隱玄玄)
땅을 살피고 하늘을 보아도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으나
시청명역력(視聽明歷歷)
보고 듣는 이것은 항상 밝아 역력히 드러나 있다
약야회득(若也會得) 만일 깨달으셨다면
돈증법신(頓證法身) 당장에 법신을 증득하여
영멸기허(永滅飢虛) 영원히 굶주림을 멸하라
(2) 고혼청 중
인연취산(因緣聚散) 인연이 모이고 흩어짐은
금고여연(今古如然)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 같나니
허철광대영통(虛徹廣大靈通)
저 넓은 허공같이 걸림 없이
왕래자재무애(往來自在無碍)
자유자재로 오고 갈 수 있으니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태어남은 어디에서 왔으며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부운자체본무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듯이
생사거래역여연 (生死去來亦如然)
죽고 사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
독유일물상독로 (獨有一物常獨露)
그러나 이 한 물건은 항상 하나로 있는 것이라
담연불수어생사 (湛然不隨於生死)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으니 이것이 무엇인가!

#3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진리의 실상을 깨치고 본다면, 삶과 죽음이라는 허망한 것을 공연히 붙잡아서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 속에서 조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실상에서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그 분별 망상이라는 허망한 생각만 없으면, 우리는 곧장 진리 속에서 본래면목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 공부를 하며 깨닫고 살아야 하긴 하지만, 실은 깨달을 것조차 없다. 그저 분별이 놓여 지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분별만 따라가지 않으면, 그냥 이렇게 사는 이것이 깨달음이다.
한 바탕 가지고 노는 것이 이 세상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법상스님>

8월 22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법상스님 - 백중 특별법문≫
#1 백중과 천도의식의 참된 의미
음력 7월 15일 오늘은 백중(우란분절)이다. 오늘은 백중을 맞아 백중기도와 천도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새기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한 번 새겨 보고자 한다.
○ 천도재의 참된 의미
참된 천도란 자기를 구제하는 것이다. 진정한 천도의 의미는 돌아가신 영가님만이 알고 가셔야 할 일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이 모두 알고 새겨야 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죽고 나서는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므로 막연하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나의 죽음도 전혀 두렵지 않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도 좀 더 지혜롭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
불교의 5대 명절- 석가탄신일,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 우란분절(백중) - 중 유일하게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목련존자와 관련된 백중에 대해 알아보자. 우란분절(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이라 하여 백 가지 종류의 열매와 곡식의 씨앗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이러한 풍성한 음식을 차려 돌아가신 영가님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낸다는 의의를 가지기도 한다.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그 어머니의 영혼이 아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구원 천도하고자 부처님께 청원하여 천도재를 지내게 된 일에서 유래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이라 하여 돌아가신 분들을 천도하는 날로 기리고 있다.
○
영가들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는 관음시식 등을 포함한 천도의식에 담긴 말씀들은 모두 선(禪)에서 비롯된다.
선사스님들의 법문 말씀이거나, 경전의 내용 등을 담아 전하여, 평생을 분별과 생각과 망상 속에서 허망하게 살다 죽은 영가들에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생사가 본래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자 하는 것이 천도의식의 참된 의미인 것이다.
보통 49재의 초재와 막재 때는 하는 관욕의식 역시, 영가를 목욕시킴으로써 억겁동안 가졌던 허망한 망상 분별의 때를 벗기고 씻어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우리는 돌아가신 영가들을 보고 귀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영가들이 귀신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바로 귀신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이 몸이, ‘나’와 ‘너’가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이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나’라고 착각하며, 나와 또 다른 수많은 ‘너’를 만들어 내가며 살고 있지 않은가?
오랫동안 너무나 굳게 진짜라고 믿어왔던 그 생각, 그 망상 분별이 바로 귀신이다. 이 생각과 망상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그 모든 생각을 잠시 비우고 그 모든 것을 실로 그냥 관하게 되면, 모든 것이 그저 왔다 가는 것들일 뿐임을 여실히 알게 되지 않던가? 이렇게 왔다 가는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허망한 것이었음을 살면서 여지껏 보아왔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 지금 진짜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바로 보라는 말이다. 진짜 진실에 관심을 두고 진리를 보고자 하며 매 순간 눈앞을 살고자 한다면, 이 몸과 마음과 생각 따위에 관심을 갖게 될 리가 없다.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짜 진리를 찾고자 해야 한다. 나다, 너다 하며 둘로 나누는 그 허망한 분별, 생각에 속아 가짜를 진짜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그 귀신의 살림살이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분 각자가 만들어 낸 자기만의 허망한 분별로 가득 찬 가상현실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이 천도재는 이와 같이 살아있는 동안 진실이라 믿고 살아 온 허망한 분별의 세상은 모두 망상이었음을, 내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음을 맞았다는 그 생각이 모두 진실이 아님을 영가에게 알리고자 하는 데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2 천도의식의 영가 법문
이러한 의미가 관음시식 중의 영가 법문인 ‘착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영가 천도의식의 착어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있다.
(1) 착어
영원담적(靈源湛寂)
신령스러운 근원은 맑고도 고요하며,
무고무금(無古無今)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고,
묘체원명(妙體圓明)
묘한 본체는 둥글고도 밝으니
하생하사(何生何死)
어찌 태어남이 있고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담적원명저일구마(湛寂圓明底 一句麽)
‘항상 고요하고 뚜렷이 밝다’하는 그 하나의 일구(一句)를 알겠는가?
부앙은현현(俯仰隱玄玄)
땅을 살피고 하늘을 보아도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으나
시청명역력(視聽明歷歷)
보고 듣는 이것은 항상 밝아 역력히 드러나 있다
약야회득(若也會得) 만일 깨달으셨다면
돈증법신(頓證法身) 당장에 법신을 증득하여
영멸기허(永滅飢虛) 영원히 굶주림을 멸하라
(2) 고혼청 중
인연취산(因緣聚散) 인연이 모이고 흩어짐은
금고여연(今古如然)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 같나니
허철광대영통(虛徹廣大靈通)
저 넓은 허공같이 걸림 없이
왕래자재무애(往來自在無碍)
자유자재로 오고 갈 수 있으니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태어남은 어디에서 왔으며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부운자체본무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듯이
생사거래역여연 (生死去來亦如然)
죽고 사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
독유일물상독로 (獨有一物常獨露)
그러나 이 한 물건은 항상 하나로 있는 것이라
담연불수어생사 (湛然不隨於生死)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으니 이것이 무엇인가!
#3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진리의 실상을 깨치고 본다면, 삶과 죽음이라는 허망한 것을 공연히 붙잡아서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 속에서 조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실상에서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그 분별 망상이라는 허망한 생각만 없으면, 우리는 곧장 진리 속에서 본래면목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이 공부를 하며 깨닫고 살아야 하긴 하지만, 실은 깨달을 것조차 없다. 그저 분별이 놓여 지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분별만 따라가지 않으면, 그냥 이렇게 사는 이것이 깨달음이다.
한 바탕 가지고 노는 것이 이 세상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