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35≫ 기도하면 이루어지나요?
#1 한 법도 쥘 것이 없다
○
어릴 때 아주 우연한 일 끝에 일별의 체험들을 하신 분들이 제법 많이 계실 것이다. 그 체험이 아주 사소하여 그냥 가볍게 지나친 분들도 계실 것이며, 때로 깊은 선정 삼매의 체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험들을 두고 이것이 깨달음이다, 아니다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모두 사라지는 일들 일 뿐 붙잡을 것이 못된다. 모두 다 그냥 그럴 뿐인 일들이다. 그렇게 흘려보내야 할 일들이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어떤 체험의 현상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또한 그렇구나 하며 흘려보내야 할 일이다. 그 어떤 것도 잡아서 쥐고는 '나는 깨달았구나'하는 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저 지금이 있을 뿐이지, 그렇게 왔다 가는, 오고 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쥐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
이런 체험들을 했다고 해서 공부가 다 끝났다거나 현실에서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할 만한 현상들은 생기지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다 그대로 있을 수 있다.
마음공부를 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법계와는 달리 사법계의 일들은 그대로 인과의 법칙을 따라 그대로 삶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그대로 겪지만 더 이상 그일들을 문제삼지 않게 된다. 그저 그럴 뿐이 되는 것이다. 힘든 일들이 찾아오고 그 일들을 다 겪지만, 인연 따라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임을 잘 아는 까닭에 그 일들에 걸림이 없어지는 것이다.

#2 기도하면 이루어지나요? 기복불교 졸업하기
○
이 마음공부의 목적은 물질 세계의 현실을 바꾸는데 있지 않다. 이 공부를 하고 깨닫고 났더니 승승장구만 하게 되는 그런 일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방편으로는 여러 스님들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를 하며 기복 수행을 하라고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알고자 하는 지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기복적 수행의 방편들은 이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 기도하고 빌어서 힘든 일들을 해결하고 인생을 좋게 바꾸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힘든 그대로이나 실은 힘들 것이 하나 없음을 곧장 알게 되는 것이 진짜 이 공부의 힘이다.
○
이 세상에는 이렇게 되어야 할 일이나 저렇게 되어야 할 일이 따로 없다. 그냥 모든 삶이 다 그대로 허용될 뿐이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행하며 살지만,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없는, 모든 삶이 있는 그대로 저절로 다 수용되는 그러한 일이 있을 뿐이다.
지금 나에게 괴로움이 왔다면, 그 괴로움이 곧 나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를 찾아온 그 아픔, 괴로움들이 곧 나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곧 법이다. 이 삶이 그대로 진리인 까닭이다.
○
본체인 이 법이 내 모양과 상으로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 있고, 그 현상을 이리 저리 쓰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곧 이 삶이 아닌가? 이 본체와 모양과 작용이 따로 셋이 아니다. 다르지 않은 하나이다. 그 전체가 통으로 '나'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던들 그 사건 전체가 통으로 '나'인 것이지 '내가 저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할 것이 아니다.

#3 체험 이후의 참된 수행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여러 단계로 설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로 나누어 둔다.
견도(見道)는 성품을 한번 보았거나 문득 깨달았다 하는 상태이다. 이 견도란 이치적인 미혹을 해결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법에 대한 안목이 밝아진 것이다. 더 이상 법에는 의심이 없어지고, 무아와 연기에 밝아진다.
수도(修道)는 현상의 문제 즉 사(事)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수행의 단계이다. 이치적으로는 분명 깨달음의 안목이 밝아졌으나, 현실적으로 문제가 계속되는 상태에서 이 문제들을 조복받는 수행을 해 나가는 시기가 된다. 깨달음 이후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학도(無學道)는 모든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4 삶이 곧 수행처
어떠한 식으로든 체험을 하게 되고 안목이 어느 정도 밝아지고 난 이후에는, 모든 삶의 문제에 힘을 빼게 될 것이다.
이 때부터는 애쓰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해 나가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니, 삶이 곧 수행처가 된다. 삶이 바로 도량이 된다.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살면서 그 삶을 통해 공부가 더 익어가는 것이다.
삶에서 곧장 법을 체험하며 삶으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곧장 이 자리로 돌아오는 그 사이의 틈이 점점 적어지게 될 것이다.

#5 ≪마조어록35≫
등은봉이 마조에게 인사를 하니 마조가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
"석두로 갑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마당을 만나면 한바탕 놀아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갔는데, 석두에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고는 석장으로 땅을 한 번 쿵 짚으며 물었다.
"이것은 무슨 종지입니까?"
석두가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등은봉은 할 말이 없었다. 돌아와 마조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마조가 말했다.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 아이고'하거든, 너는 곧 '허허!'라고 하여라."
등은봉이 다시 가서 앞서와 같이 물으니,
석두가 이에 "허허!"하고 소리를 냈다.
등은봉은 할 말이 없어졌다. 돌아와 마조에게 그대로 말하자, 마조가 말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고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마조어록> 중
스님의 강설
'허허'하든, '아이고 아이고'하든, 혹은 주장자를 들고 땅을 한 번 딱! 치든, 이미 똑같은 법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모자람을 간파당한 이 등은봉의 일화를 통해 하심(下心)을 배워야 한다.
깨달음 이후의 보임 공부를 할 때는, 자신의 견처가 어느 정도 밝아지고 열렸다 할지라도 그저 하심(下心)해야 한다.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했다 하는 그런 공부의 상을 내려놓고 하심하며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공부해가며 스스로의 견처에서 얻은 공부를 말할 줄 알아야 하거늘, 이 등은봉처럼 스승에게서 배워 들은 법을 들고 보란 듯이 자랑을 일삼는 다면 아직 그 공부가 멀고도 멀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 하심해야 한다. 자기가 공부 좀 했다는 상을 보이거나, 자기 공부를 내세우거나, 혹은 또 스승에게서든 경전에서든 여기 저기서 들은 공부를 짜맞추어 말하며 다 아는 듯이 보이려 한다면, 그 공부에 힘이 있을 리가 없다.
스승들이 성품을 확인한 제자들에게 곧 이어 한 동안은 묵언 수행을 하도록 이끌었던 까닭도 다 여기에 있다 하겠다.
<법상스님 말씀>
9월 5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35≫ 기도하면 이루어지나요?
#1 한 법도 쥘 것이 없다
○
어릴 때 아주 우연한 일 끝에 일별의 체험들을 하신 분들이 제법 많이 계실 것이다. 그 체험이 아주 사소하여 그냥 가볍게 지나친 분들도 계실 것이며, 때로 깊은 선정 삼매의 체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험들을 두고 이것이 깨달음이다, 아니다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모두 사라지는 일들 일 뿐 붙잡을 것이 못된다. 모두 다 그냥 그럴 뿐인 일들이다. 그렇게 흘려보내야 할 일들이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어떤 체험의 현상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또한 그렇구나 하며 흘려보내야 할 일이다. 그 어떤 것도 잡아서 쥐고는 '나는 깨달았구나'하는 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저 지금이 있을 뿐이지, 그렇게 왔다 가는, 오고 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쥐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
이런 체험들을 했다고 해서 공부가 다 끝났다거나 현실에서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할 만한 현상들은 생기지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다 그대로 있을 수 있다.
마음공부를 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법계와는 달리 사법계의 일들은 그대로 인과의 법칙을 따라 그대로 삶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그대로 겪지만 더 이상 그일들을 문제삼지 않게 된다. 그저 그럴 뿐이 되는 것이다. 힘든 일들이 찾아오고 그 일들을 다 겪지만, 인연 따라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임을 잘 아는 까닭에 그 일들에 걸림이 없어지는 것이다.
#2 기도하면 이루어지나요? 기복불교 졸업하기
○
이 마음공부의 목적은 물질 세계의 현실을 바꾸는데 있지 않다. 이 공부를 하고 깨닫고 났더니 승승장구만 하게 되는 그런 일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방편으로는 여러 스님들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를 하며 기복 수행을 하라고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알고자 하는 지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기복적 수행의 방편들은 이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 기도하고 빌어서 힘든 일들을 해결하고 인생을 좋게 바꾸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힘든 그대로이나 실은 힘들 것이 하나 없음을 곧장 알게 되는 것이 진짜 이 공부의 힘이다.
○
이 세상에는 이렇게 되어야 할 일이나 저렇게 되어야 할 일이 따로 없다. 그냥 모든 삶이 다 그대로 허용될 뿐이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행하며 살지만,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없는, 모든 삶이 있는 그대로 저절로 다 수용되는 그러한 일이 있을 뿐이다.
지금 나에게 괴로움이 왔다면, 그 괴로움이 곧 나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를 찾아온 그 아픔, 괴로움들이 곧 나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곧 법이다. 이 삶이 그대로 진리인 까닭이다.
○
본체인 이 법이 내 모양과 상으로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 있고, 그 현상을 이리 저리 쓰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곧 이 삶이 아닌가? 이 본체와 모양과 작용이 따로 셋이 아니다. 다르지 않은 하나이다. 그 전체가 통으로 '나'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던들 그 사건 전체가 통으로 '나'인 것이지 '내가 저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할 것이 아니다.
#3 체험 이후의 참된 수행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여러 단계로 설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로 나누어 둔다.
견도(見道)는 성품을 한번 보았거나 문득 깨달았다 하는 상태이다. 이 견도란 이치적인 미혹을 해결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법에 대한 안목이 밝아진 것이다. 더 이상 법에는 의심이 없어지고, 무아와 연기에 밝아진다.
수도(修道)는 현상의 문제 즉 사(事)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수행의 단계이다. 이치적으로는 분명 깨달음의 안목이 밝아졌으나, 현실적으로 문제가 계속되는 상태에서 이 문제들을 조복받는 수행을 해 나가는 시기가 된다. 깨달음 이후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학도(無學道)는 모든 번뇌를 끊어 더 닦을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4 삶이 곧 수행처
어떠한 식으로든 체험을 하게 되고 안목이 어느 정도 밝아지고 난 이후에는, 모든 삶의 문제에 힘을 빼게 될 것이다.
이 때부터는 애쓰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해 나가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니, 삶이 곧 수행처가 된다. 삶이 바로 도량이 된다.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살면서 그 삶을 통해 공부가 더 익어가는 것이다.
삶에서 곧장 법을 체험하며 삶으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곧장 이 자리로 돌아오는 그 사이의 틈이 점점 적어지게 될 것이다.
#5 ≪마조어록35≫
등은봉이 마조에게 인사를 하니 마조가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
"석두로 갑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마당을 만나면 한바탕 놀아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갔는데, 석두에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고는 석장으로 땅을 한 번 쿵 짚으며 물었다.
"이것은 무슨 종지입니까?"
석두가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등은봉은 할 말이 없었다. 돌아와 마조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마조가 말했다.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 아이고'하거든, 너는 곧 '허허!'라고 하여라."
등은봉이 다시 가서 앞서와 같이 물으니,
석두가 이에 "허허!"하고 소리를 냈다.
등은봉은 할 말이 없어졌다. 돌아와 마조에게 그대로 말하자, 마조가 말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고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마조어록> 중
스님의 강설
'허허'하든, '아이고 아이고'하든, 혹은 주장자를 들고 땅을 한 번 딱! 치든, 이미 똑같은 법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모자람을 간파당한 이 등은봉의 일화를 통해 하심(下心)을 배워야 한다.
깨달음 이후의 보임 공부를 할 때는, 자신의 견처가 어느 정도 밝아지고 열렸다 할지라도 그저 하심(下心)해야 한다.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했다 하는 그런 공부의 상을 내려놓고 하심하며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공부해가며 스스로의 견처에서 얻은 공부를 말할 줄 알아야 하거늘, 이 등은봉처럼 스승에게서 배워 들은 법을 들고 보란 듯이 자랑을 일삼는 다면 아직 그 공부가 멀고도 멀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 하심해야 한다. 자기가 공부 좀 했다는 상을 보이거나, 자기 공부를 내세우거나, 혹은 또 스승에게서든 경전에서든 여기 저기서 들은 공부를 짜맞추어 말하며 다 아는 듯이 보이려 한다면, 그 공부에 힘이 있을 리가 없다.
스승들이 성품을 확인한 제자들에게 곧 이어 한 동안은 묵언 수행을 하도록 이끌었던 까닭도 다 여기에 있다 하겠다.
<법상스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