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26》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가기
마조어록 중
백장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바로 지금 그대가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다."
[마조어록]

스님의 강설
○
선사스님들께 진리의 자리를 물을 때 제자들은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하기도 하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하기도 하며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법을 보여 주십시오.” 하기도 한다.
당시 당시 자주 쓰던, 법을 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몇몇 정형구들이 있다. 모두 진리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러한 진리를 묻는 질문에 마조는 ‘바로 지금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자기를 내세우며 ‘나’를 세우고 살아왔다. 몸과 마음, 이 오온을 ‘나’라고 여기면서 ‘나’를 내세우며 살아왔다. 이렇게 ‘나’를 세우면서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나’를 세우면서 분별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가짜인 ‘나’를 죽여야만이 무아(無我)가 증득된다. 이 공부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공부다. 심지어 이 마음공부를 할 때도 ‘내가 한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궁극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
이 공부는 내가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공부다. 생사해탈의 공부다. 불사(不死)의 길이다. 너무나 엄청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로 자기를 버리는 자리, 나의 목숨을 내려놓을 자리가 곧 이 진리의 자리이며, 그렇게 목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실로 부처님의 근본 뜻이 무엇인가? 근본 뜻이라 할 만한, 쥘 만한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리일 뿐, 머무를 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근본 뜻은 머리로는 답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다’ 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숨은 뜻이 따로 있다면 불이법이 아니지 않겠는가? 말로 근본 뜻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 말에도 붙잡히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승들은 세우고 파하기를,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을 자재하게 쓰며 이 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
마조스님처럼 ‘몸과 목숨을 모두 내려놓는 것 (방신명 放身命)’이라 하기도 하고,
임제어록에서는 ‘대저, 법을 위하는 사람은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는 것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상신실명 喪身失命)’,
스님들에게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 하는 등의 말을 한다.
이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내 몸과 목숨을 돌보고 챙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에 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이 몸과 목숨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공부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법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또한 방편의 말일 뿐, 내가 죽고, 법도 죽어야 한다. 사실은 법이라 할 만한 것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을 내세울 때 중생의 인연으로 여래가 생겨나는 것이고, 생사를 인연으로 해탈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으며, 생사가 없다면 실로 해탈도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눈앞(目前)의 일이 있을 뿐이지, 무언가가 따로 있을 것이 없다. 오직 지금 여기 이 일 뿐이다. 내가 한 마음 일으킬 때 비로소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일 뿐이다. 진실은 언제나 지금 이 눈 앞 뿐이라는 것이다.
○
심외무물(心外無物) : 마음 밖에 한 물건도 없다
유식무경(唯識無境) : 오로지 자기 마음일 뿐 바깥 경계가 따로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현실은 언제나 신선한, 난생 처음 경험하는 장면이다. 매일 만나는 남편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언제나 우리는 매순간 새로운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로 살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아무 일도 없다. 한 법도 일어난 바가 없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럴 뿐이다.

○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이 현실세계가 진짜일 확률은 10억분의 1일 뿐이라고 했다. 이 세상이 거짓된 환영의 세상일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또한 스웨덴 뇌과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이 현실이 컴퓨터 모의 실험같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아주 높으며, 우리 인간들은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와 같아서, 도전하지 않고 늘 똑같은 현실 속에 안주하며 진부하게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바로 버려지는 캐릭터가 된다고 했다.
매 순간 새롭게 현실을 살아있음으로써 마주하는 사람으로 살라. 자기만의 고정관념과 분별 망상에서 벗어나 삶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유희삼매를 즐기는 사람으로 살라. 분별이라는 한정된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 둔 채 삶을 죽이지 말고, 매 순간의 진짜 삶을 생생하고 새롭게 즐기도록 살려주라.
○
진실은 날마다 매순간이 새로울 수 밖에 없다. 매 순간을 살아있으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죽비를 치시며) 매 순간 살아있음을 이렇게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경험과 분별 판단에서 벗어나 지금 생생한 이 순간을 살려주라는 말이다.
"청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지금 여기에 100프로 확실하게 드러난 법이 확인되지 않는가? 청소를 하는, 설거지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곧장 부처고 진리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놀라운 매 순간의 새로운 법 자리를 그대로 곧장 살아주라는 말이다. 내 인생을 죽이지 말고, 매 순간 진짜 제대로 살려주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지혜의 현현이다."
<법상스님>

덧붙임:
인연따라 내 앞에 다가온 이 모든 일상의 일들이, 그 일들을 행하며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내 삶의 완전히 새로운 목적입니다. 지금 만나는 새로운 매 순간 순간을 그대로 살아줄 때, 그것이 수행이며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삶의 매 순간들이 그 자체로써 수행이 되고 공부가 되고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을 때, 그럴 때는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매 순간에 있을 뿐입니다. 좋거나 나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순간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순간이 바로 진짜 나입니다. 그 순간 순간의 진짜 나는 그저 침묵이며 고요이며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면서 모든 것입니다. 아무도 아닌 모두로 있을 때, 우리는 그저 눈앞을 살게 될 뿐입니다.
어떻게 명상하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저 이렇게 매 순간 순간의 새로운 일상을 살면 된다고 하십니다. 하게 된 새 일을 새 마음으로 하면 된다 하십니다. 만나게 될 사람을 새로이 만나면 된다 하십니다. 가게 된 길을 새로이 걸어가면 된다 하십니다. 먹게 될 때 먹고 자게 될때 자며 아프게 될 때는 아프면 된다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매 순간 수행중이며 매 순간 휴식중입니다.
그저 유희삼매를 즐기는 잔잔한 바람으로 눈앞을 삽니다.
법상스님께 배우는 공부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선향지 합장 올림

6월 27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26》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가기
마조어록 중
백장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바로 지금 그대가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다."
[마조어록]
스님의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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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스님들께 진리의 자리를 물을 때 제자들은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하기도 하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하기도 하며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법을 보여 주십시오.” 하기도 한다.
당시 당시 자주 쓰던, 법을 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몇몇 정형구들이 있다. 모두 진리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러한 진리를 묻는 질문에 마조는 ‘바로 지금 목숨을 내려놓을 곳’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자기를 내세우며 ‘나’를 세우고 살아왔다. 몸과 마음, 이 오온을 ‘나’라고 여기면서 ‘나’를 내세우며 살아왔다. 이렇게 ‘나’를 세우면서 괴로움이 시작되었고 ‘나’를 세우면서 분별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가짜인 ‘나’를 죽여야만이 무아(無我)가 증득된다. 이 공부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공부다. 심지어 이 마음공부를 할 때도 ‘내가 한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궁극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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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부는 내가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공부다. 생사해탈의 공부다. 불사(不死)의 길이다. 너무나 엄청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로 자기를 버리는 자리, 나의 목숨을 내려놓을 자리가 곧 이 진리의 자리이며, 그렇게 목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공부의 길이다.
실로 부처님의 근본 뜻이 무엇인가? 근본 뜻이라 할 만한, 쥘 만한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리일 뿐, 머무를 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근본 뜻은 머리로는 답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다’ 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숨은 뜻이 따로 있다면 불이법이 아니지 않겠는가? 말로 근본 뜻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 말에도 붙잡히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승들은 세우고 파하기를,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을 자재하게 쓰며 이 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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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스님처럼 ‘몸과 목숨을 모두 내려놓는 것 (방신명 放身命)’이라 하기도 하고,
임제어록에서는 ‘대저, 법을 위하는 사람은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는 것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상신실명 喪身失命)’,
스님들에게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 하는 등의 말을 한다.
이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내 몸과 목숨을 돌보고 챙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에 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이 몸과 목숨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공부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법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또한 방편의 말일 뿐, 내가 죽고, 법도 죽어야 한다. 사실은 법이라 할 만한 것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을 내세울 때 중생의 인연으로 여래가 생겨나는 것이고, 생사를 인연으로 해탈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으며, 생사가 없다면 실로 해탈도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눈앞(目前)의 일이 있을 뿐이지, 무언가가 따로 있을 것이 없다. 오직 지금 여기 이 일 뿐이다. 내가 한 마음 일으킬 때 비로소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일 뿐이다. 진실은 언제나 지금 이 눈 앞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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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외무물(心外無物) : 마음 밖에 한 물건도 없다
유식무경(唯識無境) : 오로지 자기 마음일 뿐 바깥 경계가 따로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현실은 언제나 신선한, 난생 처음 경험하는 장면이다. 매일 만나는 남편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언제나 우리는 매순간 새로운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로 살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아무 일도 없다. 한 법도 일어난 바가 없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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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이 현실세계가 진짜일 확률은 10억분의 1일 뿐이라고 했다. 이 세상이 거짓된 환영의 세상일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또한 스웨덴 뇌과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이 현실이 컴퓨터 모의 실험같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아주 높으며, 우리 인간들은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와 같아서, 도전하지 않고 늘 똑같은 현실 속에 안주하며 진부하게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바로 버려지는 캐릭터가 된다고 했다.
매 순간 새롭게 현실을 살아있음으로써 마주하는 사람으로 살라. 자기만의 고정관념과 분별 망상에서 벗어나 삶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유희삼매를 즐기는 사람으로 살라. 분별이라는 한정된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 둔 채 삶을 죽이지 말고, 매 순간의 진짜 삶을 생생하고 새롭게 즐기도록 살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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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날마다 매순간이 새로울 수 밖에 없다. 매 순간을 살아있으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죽비를 치시며) 매 순간 살아있음을 이렇게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경험과 분별 판단에서 벗어나 지금 생생한 이 순간을 살려주라는 말이다.
"청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지금 여기에 100프로 확실하게 드러난 법이 확인되지 않는가? 청소를 하는, 설거지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곧장 부처고 진리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놀라운 매 순간의 새로운 법 자리를 그대로 곧장 살아주라는 말이다. 내 인생을 죽이지 말고, 매 순간 진짜 제대로 살려주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지혜의 현현이다."
<법상스님>
덧붙임:
인연따라 내 앞에 다가온 이 모든 일상의 일들이, 그 일들을 행하며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대로 내 삶의 완전히 새로운 목적입니다. 지금 만나는 새로운 매 순간 순간을 그대로 살아줄 때, 그것이 수행이며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삶의 매 순간들이 그 자체로써 수행이 되고 공부가 되고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을 때, 그럴 때는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매 순간에 있을 뿐입니다. 좋거나 나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순간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순간이 바로 진짜 나입니다. 그 순간 순간의 진짜 나는 그저 침묵이며 고요이며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면서 모든 것입니다. 아무도 아닌 모두로 있을 때, 우리는 그저 눈앞을 살게 될 뿐입니다.
어떻게 명상하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저 이렇게 매 순간 순간의 새로운 일상을 살면 된다고 하십니다. 하게 된 새 일을 새 마음으로 하면 된다 하십니다. 만나게 될 사람을 새로이 만나면 된다 하십니다. 가게 된 길을 새로이 걸어가면 된다 하십니다. 먹게 될 때 먹고 자게 될때 자며 아프게 될 때는 아프면 된다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매 순간 수행중이며 매 순간 휴식중입니다.
그저 유희삼매를 즐기는 잔잔한 바람으로 눈앞을 삽니다.
법상스님께 배우는 공부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선향지 합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