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어록27≫ 자기의 보배창고가 이미 완전하다

목탁소리 대원정사 총무처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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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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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어록27≫ 자기의 보배창고가 이미 완전하다

마조어록 중 


월주의 대주혜해(大珠慧海)가 처음 마조를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월주(越州)의 대운사(大雲寺)에서 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의 보배창고(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무엇하겠느냐? 나의 여기에는 한 물건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한다는 것인가?"

대주는 절을 하고 물었다.

"무엇이 저 자신의 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늘 자재하게 쓰고 있거늘, 어찌 밖에서 찾고 구하느냐?"

대주가 말끝(言下)에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는(自識本心), 자기도 모르게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후 6년간 곁에서 모시다가 돌아가,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門論)」1권을 지었으니, 마조가 그것을 보고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월주에 큰 구슬(大珠)이 있어, 원만하고 밝은 광명이 자재하게 비추니 막힌 곳이 없구나.”

[마조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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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강설


불법을 구하러 온 대주 혜해스님에게 마조스님께서는 자기의 보배창고를 돌아보라 한다. 이미 일체를 다 갖추고 있는 자기의 집은 버리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법을 구하는 혜해에게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구하느냐'하며 일침을 가한다.


법이란 이미 자기 자신에게 각자 구족되어 있다며,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 확인하라 이르는 스승에게, 제자는 다시 '무엇이 자신의 보배창고인가'를, 즉 이미 자기가 쓰고 있다는 그 본래면목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 때, 마조는 놀랍도록 위대하면서도 아무 별것 아닌 이 답을 곧장 말한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정말 평범하고 흔하면서도 가장 특별한 답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가 다 갖추고 있는 것이며, 이미 우리가 자재하게 쓰고 있는 이것이니 밖에서 찾을 것이 없다 하신 것이다.


"스님, 도대체 법이 뭔가요...?"하고 묻고 있는 그것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법을 써서 그 질문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이 아니면 우리는 눈 하나 껌벅거릴 수 없다. 눈 한 번 껌벅거리는 이 소식이 바로 이 법이라는 말이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이것이 바로 이 법이 하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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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업식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는 분별심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분별심, 생사심, 생멸심이라 한다. 진짜 법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닌 항상하는 것이며 진여심이라 한다. 누구나 늘 쓰고 있으며 늘 평등한 이 마음이 곧 법이다. 그래서 마조스님은 '평상심이 곧 도'라 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분별심과 무분별심, 즉 생멸심과 진여심으로 따로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두 마음은 동시에 즉해 있으므로 틈 하나 없지만, 분별을 모두 빼고 남은 늘 한결같은 평상심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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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대상은 인연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므로 실체가 아니다. 바깥 대상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체의 허망함을 말하는 것이다. 허망하므로 있기는 있으나 아무 것도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인연법에 의해 생겨나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또 아예 없다고도 말할 수 없으므로, 그러므로 유무 중도이다. 그것이 바로 실상을 볼 줄 아는 중도의 안목인 것이다.


중생심과 분별심으로 볼 때는 일체가 다 있는 것이지만, 진여심으로 볼 때는 인연따라 생하고 멸하는 모든 것들은 실체가 아니므로 허망할 뿐이다. 모두 허상이다.


이 '분별'이라는 말을 통해 분별 아닌 것을 가리켜 보이려 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이 보이는가에는 상관없이, '봄' 그 자체를 가리키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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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심으로 보는 모든 세상은 허망하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될까? 깨닫고 나면 자기 뜻대로 의지대로 마음껏 원하는 모든 일들을 다 이루고 다 바꾸며 살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닫고 나면 어떻게 살게 될까? 

지금 이대로 그냥 살게 된다. 이것이 이대로 진리이며, 지금 이대로가 곧장 완전한 법이며, 이대로 완벽하므로 내가 따로 바꿀 필요가 없음을 알고 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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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내가 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모두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나와 대상을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놓고 '내가 저것을 본다'하는 것은 우리 중생들의 고질적인 망상이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내가 저것을 보고 있다, 내가 저것을 듣는다' 하는 이런 고질적 생각을 딱 멎게 될 때가 있지 않던가?무아지경의 순간들을 경험할 때가 분명히 있다. 명상을 할 때나 고요함 속에서 자연과 교감할 때, 분별을 쉬게하는 음악을 들을 때가 그러하다.


법문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스님의 법문을 내 귀가 듣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본래 자리에서는 어떤 것도 분별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내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이 허공이 나를 보는, 허공이 허공을 보고 있는 그러한 경험을 할 때를 가만히 되짚어 보라. 그 때는 주관인 내가 객관의 대상인 저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을 때이며, 이러한 순간을 점점 늘여갈 때 우리의 분별과 생각은 점점 내려지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늘 자재하게 이 법을 쓰며 살고 있다. 우리는 이대로 이미 100프로 완벽하다.


우리 각자의 보배 창고는 이미 완벽하다.

이미 완전히 다 있다.   

-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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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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