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어록28≫ 괴로움은 생각으로 해석된 것일 뿐, 생각 이전의 진실된 자리
목탁소리 대원정사 총무처
2021-07-12
조회수 1107
17
11
小百合(사유리)2021-07-13 08:52
스승님의 법력이 이신전심으로 전해지는 이 자리에서 늘 깨어있는 삶을 살겠습니다.스승님이 *이리 가까이 오게* 하시면 코로나가 아니면 부산으로 바로 갈듯 합니다.🤩🤩🤩
일요법회에 수고하시는 대원정사 법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요법회에 수고하시는 대원정사 법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곽은주(수선행)2021-07-13 02:38
이.리.가.까.이.오.게
스님 그 속삭임에 나도모르게
숨을 삼키고 들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아~금생에 꼭
이공부 마치고싶다
그러나 응무소주이생기심 하겠습니다
마음공부할수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넘 감동이에요
스님 그 속삭임에 나도모르게
숨을 삼키고 들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아~금생에 꼭
이공부 마치고싶다
그러나 응무소주이생기심 하겠습니다
마음공부할수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넘 감동이에요
탈퇴한 회원2021-07-12 20:47
저... 바로 나 하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 아닌 하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모든 경전과 법문은 오로지 나 하나를 위해.. 둘이 아닌 하나.. 하나가 아닌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씀.. 법문을 듣는 순간! 듣는 작용.. 계합..
이렇게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선향지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하니 좋습니다. 분발합니다..
이렇게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선향지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하니 좋습니다. 분발합니다..
최기호2021-07-12 18:54
"이리 가까이 오게..."
법상스님께서 제게 이리 물어 보신다면 ...
저는 한대 맞을까 싶어서 휙 도망갑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전심전력으로 도망 갑니다.
오직 이것 뿐 이에요. ~^^
다만 눈앞에 펼쳐진 이대로 받아 들입니다.
글을 쓰는 순간부터,
법과는 틀려지니 이 무슨 이상한 조화일까?
머리로 알면 그 즉시 틀려지고,
말 하면 어긋나고...
생각하면 나중엔 이해가 안되고...
참으로 법은 언하대오이며, 분별로 해석 할 수 없을 뿐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보임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음을 알아 갑니다.
오늘도 그렇게 좋은 하루 였습니다. ~^^
잡지 않으면, 그 자체로 자유로움을 알아갑니다.
정말 조금씩만~^^
사랑합니다.
스님과 목탁소리 대원정사~^^
우리 법우님과의 눈앞에 펼쳐진 지금의 주어진 인연을 봅니다. ~^^
다만 눈앞에 펼쳐진 그것 뿐...
법상스님께서 제게 이리 물어 보신다면 ...
저는 한대 맞을까 싶어서 휙 도망갑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전심전력으로 도망 갑니다.
오직 이것 뿐 이에요. ~^^
다만 눈앞에 펼쳐진 이대로 받아 들입니다.
글을 쓰는 순간부터,
법과는 틀려지니 이 무슨 이상한 조화일까?
머리로 알면 그 즉시 틀려지고,
말 하면 어긋나고...
생각하면 나중엔 이해가 안되고...
참으로 법은 언하대오이며, 분별로 해석 할 수 없을 뿐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보임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음을 알아 갑니다.
오늘도 그렇게 좋은 하루 였습니다. ~^^
잡지 않으면, 그 자체로 자유로움을 알아갑니다.
정말 조금씩만~^^
사랑합니다.
스님과 목탁소리 대원정사~^^
우리 법우님과의 눈앞에 펼쳐진 지금의 주어진 인연을 봅니다. ~^^
다만 눈앞에 펼쳐진 그것 뿐...

7월 11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마조어록28≫ 괴로움은 생각으로 해석된 것일 뿐, 생각 이전의 진실된 자리
늑담 법회 스님이 마조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마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리 가까이 오게."
법회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마조는 한 대 쥐어박으며 말씀하셨다.
"엿듣는 사람이 있어 안 되겠으니(여섯 귀로 함께 도모할 일이 아니니), 내일 다시 찾아오게."
법회는 다음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스님,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은 돌아가고 내가 상당법문 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오게. 그 때 증명해 주겠네."
법회는 여기에서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대중의 증명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법당을 한 바퀴 돌더니 곧 가버렸다. [마조어록]
스님의 강설
○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은 모두 분별이며 허망하다. 그러나 그 분별이 맞다 생각하고 그 생각에 집착하므로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분별의 구조이다. 분별로 인해 생긴 모든 생각과 판단과 느낌은 실체가 아닌 허상일 뿐이다.
그러니 이러한 분별의 구조를 깨뜨리고 무분별의 지혜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법의 자리를 보게 될 것이며, 모든 괴로움이 실체가 아님을 단박에 알게 될 것이다.
○
늑담법회 스님이 스승인 마조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즉 ‘도’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이럴 때 선의 스승들은 직지인심하여 도가 무엇인가를 곧장 가리켜 보인다.
마조는 제자에게 이렇게 직지인심을 하며 답한다. “이리 가까이 오게.”
도를 묻는 제자에게 스승은 곧장 직지인심으로 색즉시공의 도리를 보여 주고 있다. 스승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작용을 보여주든 - 눈을 껌뻑이든, 3×3은 9라 하든, 3×3이 16이라고 하든, 차나 한 잔 하라고 하든 - 그 말들(색)은 모두 곧장 진리(공)를 가리키며 법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곧장 직지인심하고 있는 것이다.
○
마조스님은 제자에게 “이·리· 가·까·이· 오·게” 하며 법을 드러내어 보여 주셨다. 만일 바른 안목을 깨친 제자였다면, ‘이리 가까이 오라’하는 스승의 말에 말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른 안목을 아직 갖추지 못한 제자는 그 도리를 깨치지 못하였으므로, 곧장 분별의 습관대로 말뜻을 좇아 따라가고 만다. 그렇게 말을 따라가, 스승 앞으로 가까이 다가간 제자를 마조스님은 한 대 쥐어박는다.
이럴 때 공부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이리 가까이 오라’하는 스승의 말씀이 공부인들에게는 하나의 화두가 되는 것이다. 이 스승의 한 말씀에 꽉 막혀 이렇게도 저렇게도 답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리 가까이 오게...’ 할 때, 오라 가라 하는 말뜻은 진짜 가리키는 바가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그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일 텐데, 도대체 이것이 왜 법일까? 진짜 가리키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이러한 궁금함과 간절함은 있으나, 이를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꽉 막혀버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꽉 막힌 모름 속에서 버텨야 한다. 이를 머리를 굴려서 알려고 하면 곧 분별이므로 곧장 경책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저 이렇게 꽉 막힌 채 언제까지든 깨달음의 시절인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스승은 아직 때가 아니니 제자에게 돌아가 내일 다시 찾아오라 하신 것이다.
엿듣는 사람이 있어 안 되겠으며, ‘여섯 귀가 함께 듣고 있다’ 하신 뜻은 제자의 분별심이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며, 분별심으로는 알아낼 수 있을 자리가 아니니 아직 때가 아니므로 내일 다시 찾아오라 하신 것이다.
○
분별을 따라가지 않으면 말이 나오는 그 자리가 곧장 법이다.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가 바로 법이다. 법회는 다음 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 스승의 한 말씀에 문득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선은 돌아가고 내가 상당법문 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오게. 그 때 증명해 주겠네."
스승의 이 말 한 마디에 법회는 문득 깨달음을 증득하게 된다.
○
생각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말 또한 이리 저리 어디에선가 자꾸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 생각과 말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지는 자리.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자리. 이 자리가 곧 법의 자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 속에서 그 분별의 내용만을 믿으며 살아오다 보니, 내가 말하고 내가 듣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낀다고 생각한다.
○
부처님께서는 오온개공을 설하셨다. 오온은 공하므로 실체가 아니며 수상행식도 모두 '내'가 아님을 끊임없이 설하셨다. 육근이 육경과 접촉할 때 인연 따라 의식 뿐 아니라 수. 상. 사가 모두 함께 일어나는 것임을 설하셨다. 즉 인연 따라 수상행식이 같이 일어나며 그것이 바로 마음임을 설하셨다.
그 마음이란 어떠한가? 내가 있어서 '저것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인연으로 바깥 경계가 있고, 또한 바깥 경계를 인연으로 눈이 있는 것이며, 이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눈이 없으면 바깥 세상 또한 없는 것이다.
즉 눈과 대상은 둘이 아니라 서로 의존적이며,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는 관계이다. 이렇게 인연따라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연가합으로 일어나는 거짓된 일일 뿐이며(연생무생 緣生無生) 그러므로 실체가 아닌 것이다.
○
이 공부는 부처님의 법력이 이끌어 시켜주는 공부다.
제자는 법문을 듣는다고 해서 다 깨닫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법력에 감화되어 깨닫게 된다. 스승의 법력이 이심전심으로 오롯이 제자들에게 가 닿게 될 때, 제자들은 비로소 염화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부는 마음공부다. 스승의 법이 스승의 마음에서 제자들의 마음으로 곧장 전달되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공명의 공부다. 이것이 이 공부의 길 아닌 길, 방법 아닌 방법인 것이다.
[법상스님]
***
덧붙임
지금 이 자리에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부처님이 내 앞에 오신 것이라 하십니다. 이렇게 나 하나 깨닫게 하시려고 2500년전 부처님께서 오셨다 하십니다.
이렇게 나 하나 가르치시려고 숱한 선사스님들이 계셨다 하십니다.
이렇게 나 하나 가르치시려고 우리 스님께서 날마다 법문을 설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자리만 알아내면 됩니다. 이 자리로만 돌아오면 됩니다. 비로소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바로 '나' 하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2500년전 부처님께서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만나지 않는다면 2500년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모든 경전과 모든 법문은 오로지
'나' 하나를 위해 있어요.
나와 석가모니 부처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 계합되는 순간이 바로 경전을 보는 순간이며 지금 이렇게 법문을 듣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