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어록21》"이대로 괜찮다, 저절로 살아진다"

목탁소리 대원정사 총무처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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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일요법회 법문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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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어록21》
"이대로 괜찮다, 저절로 살아진다"


성문(聲聞)은 소리를 들음으로써 불성(佛性)을 보고, 보살은 눈으로 불성을 본다.

둘이 없음을 밝게 깨닫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성품은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아서, 미혹에 있으면 식(識)이 되고, 깨달음에 있으면 지혜가 된다.

이치를 따르면 깨달음이 되고, 현상을 따르면 미혹이 된다.

미혹해도 자기 본심에 미혹한 것이며,
깨달아도 자기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


스님의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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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을 확인할 때, 주로 보다가 깨닫거나 듣다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보거나 듣고 확인하는 것 외에도 불성을 확인할 방법은 많다. 그 어떤 현상을 통해서라도 불성을 다 확인할 수 있겠지만, 주로 보고 들으며 문득 확인하게 될 때는 그 소리를 듣는 놈, 보는 놈을 돌이켜 회광반조(廻光反照)하여 알아내게 된다.


둘이 없음을 밝게 깨닫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고 했다. 볼 때 보이는 모양을 좇아가면 평등이 아니라 차별적 분별이 된다.

우리는 평소에 이렇게 분별로 세상을 보며 산다. 그러나 그렇게 '봄'속에 실은 분별없이 보는 자리가 먼저 있다.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듣되 이 자리에서 듣고, 보되 이 자리에서 볼 때... 우리는 차별없는 평등한 성품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분별의 생각에서는 크거나 작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가 있지만, 본래 분별로 보기 이전에는 크다거나 작다거나 좋거나 나쁘다가 없다.

스스로가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크고 작다면 거기에는 진짜 차별 그대로 진리라 할 수 있겠지만, 비교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크고 작고가 다르게 정해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싸고 비싼 음식을 먹거나 크고 작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생각과 관념을 먹고 있으며 무수한 분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생각에서 나온 비교 분별이므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보고 나서 듣고 나서 먹고 나서 분별된 것은 모두가 다 가짜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진리는 뭘까? 둘 아니게 보고 둘 아니게 들을 때 진실하다. 분별의 내용을 따라가지 않고 그저 보고 들을 때, 그 '본다'라는 성품과 '듣는다'라는 성품에는 차별이 없으며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보는 것과 대상이 따로 있지 않고 통으로 하나다. 이것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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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아닌, 통으로 하나인 이 진짜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 때 우리 삶은 과연 어떨까? 그러할 때, 우리의 삶에는 그냥 알아차림만 있을 뿐, 더 이상 아무런 일이 없게 된다.

생각과 개념을 다 빼고 나면 지금 무엇만이 남는가? 그냥 이렇게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 작용하며 있을 뿐이다. 소리가 그냥 경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럴 때가 바로, 있는 그대로 관하는 위빠사나, 즉 지관의 상태다. 그러니 '관심일법이 총섭제행이라' 하였다(觀心一法總攝諸行). 모든 제행을 총섭하는 공부는 바로 '관觀'하는 것이다. 생각, 개념, 해석을 멈추고 그냥 볼 뿐이다. 분별없이 볼 때 그냥 볼 뿐이고 그냥 작용이 저절로 있을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인연따라 저절로 일어나도록 세팅되어 있다. 연기법의 전자동 시스템에 의해 세상을 저절로 매 순간 작용되고 있으며 그 작용되는 일 자체는 모두 평등하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개입되면서, 내가 그 일을 한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들은 둘로 쪼개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업의 경향성을 따라 내 성격을 정해버린다.

그러나 내 성격이란 없다. 그런 '나'는 본래 없다. 그런 자아의 실체는 없다. 그냥 모든 일은 인연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작용일 뿐, 그러한 일들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일을 하는 '나'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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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렇게 알고 살 때, '나'는 없는데도 모든 일은 여기서 저기서 다 저절로 알아서 일어난다. 그냥 우리는 그 모든 일어남을 확인하며 있을 뿐이다. 이게 전부다. 다른 것이 더 있을 수 없다. 그러할 때 더 이상 괴로울 것이 없다.

그냥 둘이 아닌 하나로서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그냥 삶의 작용이 경험될 뿐이다. 이 몸은 그냥 전자동으로 세상 모든 일을 하며 살게 된다. 그러할 때, 비로소 이 둘 아닌 평등한 본성의 자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할 때, 모든 것이 법 아닌 것이 없으니 이 법자리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저절로 삶을 내맡기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삶은 이미 저절로 완전히 내맡겨지고 있다. 이미 저절로 살아지며 저절로 대응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려라. 이대로 충분한 자신을 톡닥여주라.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라. 우리는 이미 부처로서 완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삶은 이렇게 완전히 아름답고 귀하게 완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자유롭게 힘을 빼고 유연하게 살라. 우리는 이미 이대로 완성되어 있으니,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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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내가 없습니다. 이 몸이 내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어디에도 없으며 아무것도 아니지만, 다만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으로 지금 지금을 여전히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저 흐를 뿐이라, 오고 가고 살고 죽고를 모르게 되니 가볍습니다. 알아서 저절로 흘러가는 이 세상사는 그저 모를 뿐임을, 스승께 배워 밝게 알게 된 후부터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몰라서 이렇게 가볍습니다.


더 이상 애쓰며 살 필요없으니, 이제 '나'를 내려놓고 완전히 자유롭게 살라하시는...

스승께 배우며 저절로 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법상스님께 배우는 공부인입니다

선향지 합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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