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기순의 <그의 삶 나의 거울> 7.-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 주지 법상 스님
전생부터 부처님 법을 공부한 인연으로
나는 전생을 믿는다. 어제가 있고 오늘과 내일이 있듯이 내생도 믿는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짓눌러 왔던 고민을 전생을 믿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고 내생을 믿었기에 삶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로소 행복하고 밝고 경쾌하게 살 수 있었다. 나의 행복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부처님 법을 전하려 애썼다. 그때 내가 자주 해 주었던 이야기가 삼세인과설인데, 전생을 어떻게 믿느냐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영능력자였던 에드카 케이시의 이런저런 전생 투시 기록에 대해 들려주었었다.
서두에 전생 이야기를 꺼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여 년 전 법상 스님이 당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사(군법당)의 주지법사로 군포교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인터넷 종교칼럼에 실렸던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어 내가 일했던 불광출판사에서 《생활 수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그 책을 만들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부터 공부한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그 나이에 그러한 글이 나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마음공부 이야기》를 만들었고, 3년 전 국내 최초로 스님이 쓴 쿰부 트레킹 입문서인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을 만들면서 “법정 스님 가신 빈자리를 메울 법상 스님”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스님은 10여 권의 책을 저술,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는 2005년 올해의 불서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문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와 필자로 만난 법상 스님은 나이를 떠나 내게 큰 스승으로 다가왔다.

“인과응보가 일어나는 이유는 단죄라거나 벌 받는다는 등의 분별, 판단, 평가가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이유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법계의 특성이며, 진리의 근원적 본성인 까닭이다.” -법상 스님의 글 중에서
이 짧은 글에서도 스님의 지혜로운 통찰과 대자비심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사이버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www.moktaksori.org/kr)’를 통해 스님의 법향을 접할 뿐 강원도로 광주로 전주로 스님을 뵈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올 1월 중순 스님이 태릉의 육군사관학교 내 화랑호국사 주지법사로 오셨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곧바로 “불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 수행함으로써 삶을 살아나가는 힘과 지혜를 배워 보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불교아카데미 개설 소식을 접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 “한 부처님이 만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처럼 눈 밝은 스님 한 분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환희용약,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뻤던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화랑 호국사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다
“스님 강의를 들으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입니다.”(jikeunhye)
“어느 책을 보아도 스님의 해설보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죄많은 중생)
“때론 환희심에, 때론 가슴 가득 밀려오는 충만함에 (중략) 친구에게 달려가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관음행)
“이 순간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혜명화)
“불교가 이 땅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봉배산 숲속)
역시 사람 마음, 느낌은 비슷하다. 다들 자기 색깔대로 보기 마련이지만, 정말 좋은 것은 좋게 누구에게나 좋게 보인다. 위와 같이 사람들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일부러 스님과의 인터뷰를 일요법회 시간으로 잡았다. 그 감동의 전법 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화랑대역에서 육군사관학교 2학년 박재현 생도를 만나 마을버스를 같이 탄 것도 인연이다 싶다. 법당에 다닌다는 말에 반가워서 마을버스 안에서 그 짧은 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생도들의 종교분포도를 묻자, 2학년은 이웃종교와 불교가 비슷하고, 1학년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단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솔직히 오랜 시간 어린이포교, 청소년포교를 등한시한 업보를 여기저기에서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국방을 책임질 차세대 리더들의 종교관이야말로 정말 중요한데, 그나마 엇비슷하고 조금 더 낫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군법사님들께, 또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심정으로 법상 스님을 뵈러 가는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성당과 교회는 제2정문에서 매우 가까운데 화랑호국사는 깊숙이 들어앉아 있어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 가는 길이 아름답고 마치 산사를 찾아가는,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다.
“내보내는 것이 끌어당기는 것입니다.…언어의 힘은 알게 모르게 행동을 지배합니다.”라는 생활법문을 하고 계신 법상 스님, 법당 양쪽에는 스님의 법문을 요약한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다. 언어의 힘에 대한 대목에서는 MBC에서 방영한 노인과 청년을 연상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를 잰 실험결과 상영을 통해 법문의 집중도를 높였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힘이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긍정적이고 밝고 에너지 넘치는 말을 하면 우리 삶도 그렇게 됩니다. 법당에 한번 왔다간 것도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라는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환희하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우리 사는 세상 더욱 기쁨 충만한, 살 만한 세상이 될 것 같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난 삶, 출가로 이어지다
순전히 스님의 자비심 덕분에 뵐 수 있었다. 일요일 오전 여덟 시 반 생도법회, 이어서 열 시 반 신도법회, 뒤이어 부처님오신날 회의 일정, 빼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만나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였다.
“중학교 때 충북 제천의 대승사에 갔다가 스님을 뵈었는데, ‘부처님과 인연이 깊다’고 하시면서 정말 잘해 주셨어요.”
그 스님이 법기임을 알아보셨나 보다. 말의 힘도 중요하다. 법상 스님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칭찬,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하늘처럼 느껴지던 큰스님이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너는 크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아낌없는 사랑을 주실 때 집안이 어려워 의기소침했던 소년은 용기백배해졌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진짜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되었고, 이루기 위한 기도를 열심히 했다. 신기할 정도로 성적도 좋아지고, 반장, 불교학생회장, 불교학생회연합회장을 도맡아했다. 10여 년 동안 이자 내기에도 버거워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성공하여 그 많은 빚을 다 갚고 집안이 행복해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너무나 달라진 것입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것이지요. 내가 변하니 가족도 변했어요. 내 친구들도 나처럼 변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열심히 전법을 하고 불교학생회를 활성화시켰습니다.”
나는 스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부처님을 만났을 그 당시의 면면과 너무나 비슷해서 감동했다. 그 당시 나의 꿈도 포교사였다. 지금 어찌 보면 억지로 이 연재를 끌고 가는 것도 포교에 대한 미련, 내가 잘 못 하니 잘하시는 분들을 수희찬탄하고 감사하면서 조금이라도 포교에 동참하고픈 열망에서다.
법을 전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흔히 군대를 포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하는데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군에 오기 전에 청년회를 만들어서 1년 정도 열심히 청년 포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와서 보니,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노력 대비 정말 큰 결실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아직도 치마불교, 노인불교의 오명을 쓰고 있다. 남자, 젊은 층이 적다보니 항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젊은 청년들이 모인 군대야말로 불법을 전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큰절 신도회장을 여러 차례 지낼 정도로 독실한 보살님이 계셨는데, 성당 다니던 아드님을 절에 데리고 가는 게 소원이셨다고 합니다.”
불자들은 대부분 ‘종교는 자유’라고 생각해서 자식들의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데, 나중에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이 보살님은 법상 스님 덕분에 ‘아들이 불심을 찾는 소원’을 풀었으니 평생 은혜를 입은 셈이다.
“최전방의 힘든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더군요. 제가 찾아가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시더라.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라.’라고 하면서 ‘이것도 인연인데 법당에 올래’라고 하니까 바로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면 그 은혜가 배가되기 마련이다. 군포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 생소한 환경에서 지내자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때 손 잡아주고 맛있는 것 주고 위로해 준 종교가 영원히 가슴에 남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군법사의 역할이 크다. 게다가 군법사는 법당에 나오는 불자들만의 법사가 아니다. 법회에서 설법도 하지만, 전 장병들에게 합법적으로 인성교육을 시키는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처님 법이 훌륭하다 해도 그 법을 전하는 법사가 훌륭해야 불교를 제대로 알릴 수 있다. 법사가 훌륭하면 불교 용어 한 마디 쓰지 않고도 포교할 수 있다.
“현재 130여 분의 군법사님들이 계신데 정말 훌륭하십니다. 공부도 치열하게 하시고 열정적으로 포교하십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이웃종교에 비해 굉장히 열악한 편인데도 정말 선전하고 계십니다.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법회 소식과 장병들 개개인의 활동사진을 부모님과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올려놓고 일일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는 등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어린이 청소년 포교를 그토록 오랫동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불자 인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군포교 덕분인 듯해서 전국의 군법사님들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 솟는다.
“스님 같은 분이 오래 동안 군에 계셔서 군포교를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내게 “그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이미 나라는 것을 놓았기 때문에 군에 있게 되면 부처님께서 제게 조금 더 하라는 부촉으로, 군에서 나오게 되면 자유롭게 더 열심히 포교하라는 부촉으로 받아들이면서 늘 최선을 다해 할 뿐입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무한가능성이 열립니다.”
‘삶은 언제나 완전하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는 목탁소리의 슬로건이 뇌리를 스쳤다. 화랑 호국사에서 스님을 만나고 행복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졌다. 하얀 백목련도 활짝 웃고 있다.
화랑호국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법상 스님 이야기
“젊은 세대들 공감할 수 있도록 법문 준비를 철저히 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여요. 덕분에 생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저 개인적으로도 두려움이 없어지고 편안해져서 정말 감사해요. 또한 민간인 불자들이 전에는 별로 없었는데 스님 오신 뒤부터 많이 늘어났어요. 불교아카데미에 180명이 넘게 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서울 각 지역에서 오세요. 정말 화랑호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에요.”(강이선)
“법문을 쉽고 재미있게 해 주셔서 쏙쏙 들어와요. 생활 법문이 가슴에 와닿아서 바로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 주셔요.”(황수남)
“세심하시고 공정하시고, 항상 받아들여주세요. 생도들은 물론이고 저희들과도 소통이 잘 돼서 무슨 일을 하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권현정)
“화랑호국사 카페를 활성화시켜서 생도들에게 미션을 수행하게 해서 전국적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계세요. 매주 수요일 생도들 법회 때 법회를 마친 뒤 차담을 나누는 것도 생도들에게 좋은 자리가 되고 있어요.”(무명보살)
“수요법회 때 생도들에게 음악을 틀어주고 편안하게 명상을 하고 저절로 힐링이 될 수 있도록 이끄신 다음에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법문을 해 주시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벽송)
“포교에 아주 적극적이세요. 불교 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 걱정도 돼요. 저렇게 애쓰시다가 병이라도 나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불교 공부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좋아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지 의논해서 하시는 것도 좋고, 불만도 있어요. 화랑호국사가 조용한 기도도량이었는데 갑자기 일반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 정신이 없을 때가 있어요. 즐거운 비명이죠. 없어졌던 어린이법회를 새로 여셨는데 활성화시켜 주셨으면 좋겠어요.”(노철준)
“자상하시고 평등하세요. 누구에게든 똑같이 대해 주세요. 권위주의도 전혀 없으시고,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요.”
“스님의 품위 있고 단정한 모습, 선승 같은 면모가 좋아요. 뵙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겨요.”(이상영)
“목탁소리에서 스님을 알았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처럼 감동적이에요. 게다가 화랑호국사를 오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요.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이곳에 오면 그냥 여행 온 기분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안혜경)
“개개인 누구나 편안하게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에요. 저도 상이 좀 없어졌어요. 내려놓는 법도 배웠고요. 법문을 들으면서 늘 ‘아’ 하는 느낌을 받고 감동하지요. 법문을 듣고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감사하고 있어요.” (이향순)
“아주 뛰어나신 분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가슴에 와 닿게 법문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성영덕)
“한마디로 진정성 있는 법문이시죠? 정말 내공이 느껴져요.”(한명추)
“저는 만 가지 복을 받은 것 같아요. 스님을 광주에서도 뵈었는데, 서울에 이사 와서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황명숙)
“차분하고 부드럽고...”(현역 병장)
“인터넷을 활용해서 더 잘 소통할 수 있고, 신도들도 많이 늘어나고, 병사들과 생도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 가져 주시고, 말도 먼저 걸어주시고, 편안한 법문,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해 주셔서 좋아요.”(현역 상병)
이분들의 진정성 있는 말씀이 기자의 글보다 나을 듯해 덧붙인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간식을 손수 준비하는 관음회 불자들, 월 1회 동참하는 목탁소리 회원들, 떡을 보시해 주고 있는 보문회 회원들, 후원해 주는 안국사와 진각종에 마음 깊이 감사하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포교의 중요성을 실감하였기에 모쪼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 후원하여 경제적인 문제로 인재불사가 버거운 일은 없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하였다.

사기순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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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기순의 <그의 삶 나의 거울> 7.-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 주지 법상 스님
전생부터 부처님 법을 공부한 인연으로
나는 전생을 믿는다. 어제가 있고 오늘과 내일이 있듯이 내생도 믿는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짓눌러 왔던 고민을 전생을 믿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고 내생을 믿었기에 삶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로소 행복하고 밝고 경쾌하게 살 수 있었다. 나의 행복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부처님 법을 전하려 애썼다. 그때 내가 자주 해 주었던 이야기가 삼세인과설인데, 전생을 어떻게 믿느냐는 친구들의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영능력자였던 에드카 케이시의 이런저런 전생 투시 기록에 대해 들려주었었다.
서두에 전생 이야기를 꺼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여 년 전 법상 스님이 당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사(군법당)의 주지법사로 군포교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인터넷 종교칼럼에 실렸던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어 내가 일했던 불광출판사에서 《생활 수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그 책을 만들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부터 공부한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그 나이에 그러한 글이 나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마음공부 이야기》를 만들었고, 3년 전 국내 최초로 스님이 쓴 쿰부 트레킹 입문서인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을 만들면서 “법정 스님 가신 빈자리를 메울 법상 스님”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스님은 10여 권의 책을 저술,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는 2005년 올해의 불서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문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와 필자로 만난 법상 스님은 나이를 떠나 내게 큰 스승으로 다가왔다.
“인과응보가 일어나는 이유는 단죄라거나 벌 받는다는 등의 분별, 판단, 평가가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이유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법계의 특성이며, 진리의 근원적 본성인 까닭이다.” -법상 스님의 글 중에서
이 짧은 글에서도 스님의 지혜로운 통찰과 대자비심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사이버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www.moktaksori.org/kr)’를 통해 스님의 법향을 접할 뿐 강원도로 광주로 전주로 스님을 뵈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올 1월 중순 스님이 태릉의 육군사관학교 내 화랑호국사 주지법사로 오셨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곧바로 “불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 수행함으로써 삶을 살아나가는 힘과 지혜를 배워 보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불교아카데미 개설 소식을 접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 “한 부처님이 만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처럼 눈 밝은 스님 한 분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환희용약,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뻤던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화랑 호국사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다
“스님 강의를 들으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입니다.”(jikeunhye)
“어느 책을 보아도 스님의 해설보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죄많은 중생)
“때론 환희심에, 때론 가슴 가득 밀려오는 충만함에 (중략) 친구에게 달려가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관음행)
“이 순간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혜명화)
“불교가 이 땅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봉배산 숲속)
역시 사람 마음, 느낌은 비슷하다. 다들 자기 색깔대로 보기 마련이지만, 정말 좋은 것은 좋게 누구에게나 좋게 보인다. 위와 같이 사람들의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일부러 스님과의 인터뷰를 일요법회 시간으로 잡았다. 그 감동의 전법 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화랑대역에서 육군사관학교 2학년 박재현 생도를 만나 마을버스를 같이 탄 것도 인연이다 싶다. 법당에 다닌다는 말에 반가워서 마을버스 안에서 그 짧은 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생도들의 종교분포도를 묻자, 2학년은 이웃종교와 불교가 비슷하고, 1학년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단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솔직히 오랜 시간 어린이포교, 청소년포교를 등한시한 업보를 여기저기에서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국방을 책임질 차세대 리더들의 종교관이야말로 정말 중요한데, 그나마 엇비슷하고 조금 더 낫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군법사님들께, 또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심정으로 법상 스님을 뵈러 가는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성당과 교회는 제2정문에서 매우 가까운데 화랑호국사는 깊숙이 들어앉아 있어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 가는 길이 아름답고 마치 산사를 찾아가는,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다.
“내보내는 것이 끌어당기는 것입니다.…언어의 힘은 알게 모르게 행동을 지배합니다.”라는 생활법문을 하고 계신 법상 스님, 법당 양쪽에는 스님의 법문을 요약한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다. 언어의 힘에 대한 대목에서는 MBC에서 방영한 노인과 청년을 연상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를 잰 실험결과 상영을 통해 법문의 집중도를 높였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힘이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합니다. 긍정적이고 밝고 에너지 넘치는 말을 하면 우리 삶도 그렇게 됩니다. 법당에 한번 왔다간 것도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라는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환희하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우리 사는 세상 더욱 기쁨 충만한, 살 만한 세상이 될 것 같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난 삶, 출가로 이어지다
순전히 스님의 자비심 덕분에 뵐 수 있었다. 일요일 오전 여덟 시 반 생도법회, 이어서 열 시 반 신도법회, 뒤이어 부처님오신날 회의 일정, 빼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만나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였다.
“중학교 때 충북 제천의 대승사에 갔다가 스님을 뵈었는데, ‘부처님과 인연이 깊다’고 하시면서 정말 잘해 주셨어요.”
그 스님이 법기임을 알아보셨나 보다. 말의 힘도 중요하다. 법상 스님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칭찬,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하늘처럼 느껴지던 큰스님이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너는 크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아낌없는 사랑을 주실 때 집안이 어려워 의기소침했던 소년은 용기백배해졌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진짜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되었고, 이루기 위한 기도를 열심히 했다. 신기할 정도로 성적도 좋아지고, 반장, 불교학생회장, 불교학생회연합회장을 도맡아했다. 10여 년 동안 이자 내기에도 버거워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성공하여 그 많은 빚을 다 갚고 집안이 행복해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너무나 달라진 것입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것이지요. 내가 변하니 가족도 변했어요. 내 친구들도 나처럼 변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열심히 전법을 하고 불교학생회를 활성화시켰습니다.”
나는 스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부처님을 만났을 그 당시의 면면과 너무나 비슷해서 감동했다. 그 당시 나의 꿈도 포교사였다. 지금 어찌 보면 억지로 이 연재를 끌고 가는 것도 포교에 대한 미련, 내가 잘 못 하니 잘하시는 분들을 수희찬탄하고 감사하면서 조금이라도 포교에 동참하고픈 열망에서다.
법을 전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흔히 군대를 포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하는데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군에 오기 전에 청년회를 만들어서 1년 정도 열심히 청년 포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와서 보니,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노력 대비 정말 큰 결실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아직도 치마불교, 노인불교의 오명을 쓰고 있다. 남자, 젊은 층이 적다보니 항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젊은 청년들이 모인 군대야말로 불법을 전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큰절 신도회장을 여러 차례 지낼 정도로 독실한 보살님이 계셨는데, 성당 다니던 아드님을 절에 데리고 가는 게 소원이셨다고 합니다.”
불자들은 대부분 ‘종교는 자유’라고 생각해서 자식들의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데, 나중에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이 보살님은 법상 스님 덕분에 ‘아들이 불심을 찾는 소원’을 풀었으니 평생 은혜를 입은 셈이다.
“최전방의 힘든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더군요. 제가 찾아가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시더라.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라.’라고 하면서 ‘이것도 인연인데 법당에 올래’라고 하니까 바로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면 그 은혜가 배가되기 마련이다. 군포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 생소한 환경에서 지내자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때 손 잡아주고 맛있는 것 주고 위로해 준 종교가 영원히 가슴에 남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군법사의 역할이 크다. 게다가 군법사는 법당에 나오는 불자들만의 법사가 아니다. 법회에서 설법도 하지만, 전 장병들에게 합법적으로 인성교육을 시키는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처님 법이 훌륭하다 해도 그 법을 전하는 법사가 훌륭해야 불교를 제대로 알릴 수 있다. 법사가 훌륭하면 불교 용어 한 마디 쓰지 않고도 포교할 수 있다.
“현재 130여 분의 군법사님들이 계신데 정말 훌륭하십니다. 공부도 치열하게 하시고 열정적으로 포교하십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이웃종교에 비해 굉장히 열악한 편인데도 정말 선전하고 계십니다.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법회 소식과 장병들 개개인의 활동사진을 부모님과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올려놓고 일일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는 등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어린이 청소년 포교를 그토록 오랫동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불자 인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군포교 덕분인 듯해서 전국의 군법사님들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 솟는다.
“스님 같은 분이 오래 동안 군에 계셔서 군포교를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내게 “그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이미 나라는 것을 놓았기 때문에 군에 있게 되면 부처님께서 제게 조금 더 하라는 부촉으로, 군에서 나오게 되면 자유롭게 더 열심히 포교하라는 부촉으로 받아들이면서 늘 최선을 다해 할 뿐입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무한가능성이 열립니다.”
‘삶은 언제나 완전하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는 목탁소리의 슬로건이 뇌리를 스쳤다. 화랑 호국사에서 스님을 만나고 행복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졌다. 하얀 백목련도 활짝 웃고 있다.
화랑호국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법상 스님 이야기
“젊은 세대들 공감할 수 있도록 법문 준비를 철저히 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여요. 덕분에 생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저 개인적으로도 두려움이 없어지고 편안해져서 정말 감사해요. 또한 민간인 불자들이 전에는 별로 없었는데 스님 오신 뒤부터 많이 늘어났어요. 불교아카데미에 180명이 넘게 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서울 각 지역에서 오세요. 정말 화랑호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에요.”(강이선)
“법문을 쉽고 재미있게 해 주셔서 쏙쏙 들어와요. 생활 법문이 가슴에 와닿아서 바로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 주셔요.”(황수남)
“세심하시고 공정하시고, 항상 받아들여주세요. 생도들은 물론이고 저희들과도 소통이 잘 돼서 무슨 일을 하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권현정)
“화랑호국사 카페를 활성화시켜서 생도들에게 미션을 수행하게 해서 전국적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계세요. 매주 수요일 생도들 법회 때 법회를 마친 뒤 차담을 나누는 것도 생도들에게 좋은 자리가 되고 있어요.”(무명보살)
“수요법회 때 생도들에게 음악을 틀어주고 편안하게 명상을 하고 저절로 힐링이 될 수 있도록 이끄신 다음에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법문을 해 주시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벽송)
“포교에 아주 적극적이세요. 불교 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 걱정도 돼요. 저렇게 애쓰시다가 병이라도 나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불교 공부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좋아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지 의논해서 하시는 것도 좋고, 불만도 있어요. 화랑호국사가 조용한 기도도량이었는데 갑자기 일반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 정신이 없을 때가 있어요. 즐거운 비명이죠. 없어졌던 어린이법회를 새로 여셨는데 활성화시켜 주셨으면 좋겠어요.”(노철준)
“자상하시고 평등하세요. 누구에게든 똑같이 대해 주세요. 권위주의도 전혀 없으시고,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요.”
“스님의 품위 있고 단정한 모습, 선승 같은 면모가 좋아요. 뵙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겨요.”(이상영)
“목탁소리에서 스님을 알았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처럼 감동적이에요. 게다가 화랑호국사를 오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요.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이곳에 오면 그냥 여행 온 기분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안혜경)
“개개인 누구나 편안하게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분이에요. 저도 상이 좀 없어졌어요. 내려놓는 법도 배웠고요. 법문을 들으면서 늘 ‘아’ 하는 느낌을 받고 감동하지요. 법문을 듣고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감사하고 있어요.” (이향순)
“아주 뛰어나신 분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가슴에 와 닿게 법문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성영덕)
“한마디로 진정성 있는 법문이시죠? 정말 내공이 느껴져요.”(한명추)
“저는 만 가지 복을 받은 것 같아요. 스님을 광주에서도 뵈었는데, 서울에 이사 와서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황명숙)
“차분하고 부드럽고...”(현역 병장)
“인터넷을 활용해서 더 잘 소통할 수 있고, 신도들도 많이 늘어나고, 병사들과 생도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 가져 주시고, 말도 먼저 걸어주시고, 편안한 법문,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해 주셔서 좋아요.”(현역 상병)
이분들의 진정성 있는 말씀이 기자의 글보다 나을 듯해 덧붙인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간식을 손수 준비하는 관음회 불자들, 월 1회 동참하는 목탁소리 회원들, 떡을 보시해 주고 있는 보문회 회원들, 후원해 주는 안국사와 진각종에 마음 깊이 감사하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포교의 중요성을 실감하였기에 모쪼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 후원하여 경제적인 문제로 인재불사가 버거운 일은 없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하였다.
사기순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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