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서 깨달음으로

황두현
2025-01-28
조회수 267
3
11

iris2025-01-29 00:07
눈썹 찌푸릴 일은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없나니
참기 어려운 건 동쪽 마을의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마음 경계 언제 잠시라도 그칠 때 있던가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같은 주지가 몇이나 될까
...
조주선사의 십이시가 중 일부인데요
이런 저런 마음 올라오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자질구레한 마음을 텅 빈 공성의 마음으로 관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서 그것이 충분히 가능했기에 조주 고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후세에 깨달았다고 하면서 말끔함을 주장하는 이들이 나올까 염려하여 굳이 이런 시를 지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명멸하는 환영에 시비를 두지 않고 대신 바탕자리의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업장의 크기만큼 진보가 없는 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은 일에서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하게 되지 않나 하는 부분도 체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올라오는 마음을 텅 빈 공성의 바탕에서 관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일상에서 끌려 다닐 때가 많아 많이 부족하지만
지나가다가 한 말씀 드리게 되네요
참기 어려운 건 동쪽 마을의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마음 경계 언제 잠시라도 그칠 때 있던가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같은 주지가 몇이나 될까
...
조주선사의 십이시가 중 일부인데요
이런 저런 마음 올라오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자질구레한 마음을 텅 빈 공성의 마음으로 관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서 그것이 충분히 가능했기에 조주 고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후세에 깨달았다고 하면서 말끔함을 주장하는 이들이 나올까 염려하여 굳이 이런 시를 지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명멸하는 환영에 시비를 두지 않고 대신 바탕자리의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업장의 크기만큼 진보가 없는 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은 일에서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하게 되지 않나 하는 부분도 체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올라오는 마음을 텅 빈 공성의 바탕에서 관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일상에서 끌려 다닐 때가 많아 많이 부족하지만
지나가다가 한 말씀 드리게 되네요

KK럭키2025-01-29 09:10
삶의 모름을 받아들이세요.
삶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세요.
깨달음의 어떤 상도 그리지 마시고 추구하지 마세요.
오직 모를 뿐을 가슴에 새기고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심정으로 길 없는 길을 답답하지만 나아가십시오.
일체 모든 것은 모를 뿐입니다.
모를 때 비로소 본래 있던 것이 확인될지도 모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성불하십시오~
삶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세요.
깨달음의 어떤 상도 그리지 마시고 추구하지 마세요.
오직 모를 뿐을 가슴에 새기고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심정으로 길 없는 길을 답답하지만 나아가십시오.
일체 모든 것은 모를 뿐입니다.
모를 때 비로소 본래 있던 것이 확인될지도 모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성불하십시오~

수월2025-01-30 05:52
안녕하세요 황두현 도반님:)
저도 도반님처럼 괴로움의 불에 타던 때가 있었기에 도반님의 절박하심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전혀 몰랐고 법상스님의 법문으로 유튜브동영상에서 처음 불교에 입문하였습니다.
법상스님의 법문을 듣는 도중 화택의 비유 말씀에 남탓만 찾았는데 남이아닌 내가 바로 나 자신을 불태우고 있음을 알았고 스님의 “불교란 괴로움의 소멸입니다”라는 말씀에 완전한 믿음으로 발심되어 괴로움의 소멸만을 바라며 스님의 법문을 거의 하루 24시간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을때 정말 스님의 말씀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모든 일상중에 다 그렇게 했습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으면서도 한쪽 손은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들으려고 온 정신을 기울였고 자연을 산책하면서 이어폰을 잊은 날은 핸드폰을 귀에 꼬옥 대고 들으며 걸었고, 마트의 소란한 음악소리 속에서도 이어폰으로 법문을 들으며 스님 말씀의 한 자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저 혼자의 공간에서 스님 법문을 듣는 시간은 더욱 특별히 법문듣는 묘미가 더했습니다. 하늘에서 법의 꽃비가 내리는듯 황홀했고 땅속에서 감로수가 솟는듯하다는 말씀이 딱 이런것같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되었습니다. 밥를 먹으면서도 듣고, 자면서도 듣고.. 그렇게 법문에 관심이 가버린 저는 차차 일상의 재미보다 법문듣기가 훨씬 감로수와 같이 재미있고 달았습니다. TV드라마와 힐링이되었던 아름다운 음악도 너무 무미건조해져서 더이상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올려주신 유튜브 영상에 올라오는 법문들은 모두 세번이상 들은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올려주시는 영상으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남는 시간은 오디오클립 앱에 있는 ‘법상스님의목탁소리’에 올려놓으신 법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번 들었습니다.
저는 법문들으면서 별 의문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대해 아는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스님법문을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감사하며 아는만큼 들리고 아는만큼 사유했습니다. 불교 교리에 문외한이라 답답함도 없진 않았지만 법상스님의 법문은 불교를 몰라도 들을수 있는 알기 쉽고 친절한 법문이셨습니다. 그리고 듣기 적당한 스님의 억양과 정확한 발음과 듣기 편한 목소리와 좋은 성능의 마이크 등등 정말 법문의 초보자에게 너무도 감사하게 편안한 법문듣기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길을 걷거나 산책하며 들을 때는 스님께서 같이 걸으시며 설법하여 주신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몰입했고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와 잠을 못 이룬 시간에는 스님께서 가까이에서 설해주신다고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법문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스님의 법문 뿐 아니라 스님의 모든 명상과 말씀들 모두를 다 찾아 듣고 또 들으며 온전한 몰입으로 법문과 하나되어 이 세상의 재미보다는 정말 꿀 처럼 달콤하게 떨어지는 스님의 법문은 저를 지옥같은 괴로움에서도 벗어나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잘 때는 법문을 틀어놓고 잠에 들었고 깨어있을 때에도 가능한 모든 시간을 법문듣기에 주력했습니다. 그저 손에는 계속 법문듣는 폰이 들려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듣다보니 오디오클립 앱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 있는 스님의 모든 법문을 세번 이상 들은 것 같습니다. 저에겐 정말 큰 도움이고 보석보다 더 귀한 법문이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빠져들던 어느날 단지 스님의 ‘불교는 다름이 아니라 괴로움의 소멸이에요’ 라는 그 말씀’에 화두가 걸렸습니다. 그 때는 참 다행이도 코로나 시기라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었고 하던 일도 많이 줄어들어서 저에게는 굉장한 행운의 시기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해졌고 가벼워졌으며 삶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사건들이나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대해 수용과 허용, 용서와 이해를 하게 되었으며 내 잘못에대한 인정을 하게 되고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법문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감정이 정화되어갔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감사와 사랑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마음이 짙어졌으며 나를 놓아버리는 여여함의 기쁨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법상스님의 법문을 단 한 말씀을 놓칠까, 단 한 자를 놓칠까 하며 오로지 ‘괴로움의 소멸’ 그 하나의 화두로 저의 발심은 나날이 더욱 무소의 뿔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굳세게 굳세게 쉬지않고 막힘없이 힘차게 힘차게 앞을 내 딛었습니다.
저는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법문에서 들으며 저와는 별개의 불교신자분들만 아시고 원하는 그런것인줄알고 무슨 말씀일까 궁금한 정도였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괴로움의 소멸’ 그 말씀이 저의 믿음을 끌어당겼고 저는 스님의 그 말씀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아.. 괴로움의 소멸이라 하신 그 하늘에서 말씀해 주시는것과 같은 나의 모든것을 걸고 가는 그 화두,, ‘고통의 소멸’ 그 끝이 뭔지는 몰랐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발심은 더욱 더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는 한 평생을 거쳐 제가 가장 원했고 제게 가장 필요한 말씀임이 확실했습니다. 이렇게 오로지 법문에 저의 온 존재가 몰입되어 있다보니 어떤 때는 법문을 듣다가 잠이 들었는데 스님의 목탁소리와 똑같이 호흡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며 깨어난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밤낮으로 듣고 또 들어도 법상스님의 법문은 지루함이 없었으며 불타는 화택과 같은 저에게는 들을수록 샘솟는 감로수가 되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로눈물겹게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물건 정리를 하면서도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언제든 법문을 들으며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저의 온 존재로, 온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 해 귀 기울여 그저 들을 뿐 이었습니다.
법문을 듣고있는 그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듣는 그 순간이 감사롭고 정말 그 시간만이 살 것 같았고 들을수록 가볍고 편안하고 삶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무분별지! 처음 들어보는 말씀이었지만 너무도 매력적인 단어였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듣고 또 듣고 들으며 행복하고 그 이상의 지복이 없는듯 좋았습니다.
어느 날! 소소한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귀는 온전히 법문듣기에 열려있었고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조용하게 법문에 귀 기울이고 더 온전히 듣고자 손가락의 움직임조차 멈춰서..법상스님께서 무슨말씀을 하시나.. 아.. 듣고싶다 듣고싶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듣자 듣자.. 뭐라고 말씀하시지.. ?더욱 귀 기울이고 더욱 하나되어.. 숨소리마저 작게 호흡도 조심히 들으려고 하며 귀 기울이며 몸과 마음과 귀가 온전히 법문과 하나되는 그 순간… ..!!
소 뒷걸음질 하다 뭐를 잡게 된다는.. 바로 그 일이 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니 이미 있었지만 모르고 분별심만으로 살아 괴로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던 저의 눈 앞에서 색즉시공이 목격된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적멸이었습니다.
나의 성품을 보았습니다.
내가 무었인지가 드러난것입니다.
이 진리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밖으로만 찾던것이 안으로 돌아서서 나를 본 것 입니다. 모든것이 환영이었으며 불생불멸의 이것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영가현각스님의 증도가 첫구절
군불견!! 이 한말씀에서 증도의 절절한 가슴벅참이 전해집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 눈 앞에서 그대로 목격됩니다.
일체유심조! 불이! 불생불멸!
이것이 바로 ’나‘였던 것 입니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밖을 향해 찾고 갈구하던 내가 나를 향해 돌아서자 밖에 보이던 것은 색즉시공을 드러냈고 마치 생명없는 대충 그려진 평면의 만화와 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공이었으며, 저의 몸도 없고 감정, 느낌, 생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몸이 아니고 생각과 느낌 감정도 아니었습니다. 적멸이었습니다. 나의 성품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진리였습니다. 전체가 오로지 이것 하나 일체유심조였습니다.
나의 고통은 이렇게 소멸되었습니다✨✨
내가 부처, 내가 신, 일체유심조 그 말씀! 바로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나의 성품이 무엇인지가 목격되는것입니다. 일체유심조! 이 전체가 하나인 이것은 바다의 가장 깊은 밑바닥의 전혀 흔들림없는 심연의 진공 상태처럼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하고 안전하고 부드럽고 핵폭탄이 떨어져도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이 진공충전재가 들어간곳에 머무는것 같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고요함에 마취된 듯 하였습니다. 모든것이 멈춘것 같은.. 그렇게 전전긍긍했던 내 육신은 없는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 영원 불생불멸의 이것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었나 했어요. 영만 있는 느낌 일체유심조, 전체, 신의존재, 불생불멸, 그것만이 전체에 가득 찬 하나이고 제가 지각했던 모든것들이 적멸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내가 살아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하며 팔이 움직이면 살은거지 하며 내가 팔을 들려고하니 팔이 올라가고 또 다른 팔을 들려고하니 들리고 너무 신기해서 발을 움직이니 발이 움직였습니다. 걸을 수도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진공묘유 소소영영이 드러나는 이 근원, 하나, 나의 성품, 진리, 고경, 본래면목, 텅빈 충만,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괴로움이 소멸된 진공상태와 같은 바람한점도 느낄 수 없이 지극히 평화로운 고요 이 자리! 이것이 나 입니다. 이것이 부처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불생불멸입니다. 우리모두는 다 그런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요!
그래서 이 순간도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이 명확해집니다.
오는것은 받아들이고 가는것은 놓아주며 열정과 즐거움으로 사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것이 다 없읍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저도 도반님처럼 괴로움의 불에 타던 때가 있었기에 도반님의 절박하심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전혀 몰랐고 법상스님의 법문으로 유튜브동영상에서 처음 불교에 입문하였습니다.
법상스님의 법문을 듣는 도중 화택의 비유 말씀에 남탓만 찾았는데 남이아닌 내가 바로 나 자신을 불태우고 있음을 알았고 스님의 “불교란 괴로움의 소멸입니다”라는 말씀에 완전한 믿음으로 발심되어 괴로움의 소멸만을 바라며 스님의 법문을 거의 하루 24시간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을때 정말 스님의 말씀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모든 일상중에 다 그렇게 했습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으면서도 한쪽 손은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들으려고 온 정신을 기울였고 자연을 산책하면서 이어폰을 잊은 날은 핸드폰을 귀에 꼬옥 대고 들으며 걸었고, 마트의 소란한 음악소리 속에서도 이어폰으로 법문을 들으며 스님 말씀의 한 자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저 혼자의 공간에서 스님 법문을 듣는 시간은 더욱 특별히 법문듣는 묘미가 더했습니다. 하늘에서 법의 꽃비가 내리는듯 황홀했고 땅속에서 감로수가 솟는듯하다는 말씀이 딱 이런것같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되었습니다. 밥를 먹으면서도 듣고, 자면서도 듣고.. 그렇게 법문에 관심이 가버린 저는 차차 일상의 재미보다 법문듣기가 훨씬 감로수와 같이 재미있고 달았습니다. TV드라마와 힐링이되었던 아름다운 음악도 너무 무미건조해져서 더이상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올려주신 유튜브 영상에 올라오는 법문들은 모두 세번이상 들은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올려주시는 영상으로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남는 시간은 오디오클립 앱에 있는 ‘법상스님의목탁소리’에 올려놓으신 법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번 들었습니다.
저는 법문들으면서 별 의문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대해 아는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스님법문을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감사하며 아는만큼 들리고 아는만큼 사유했습니다. 불교 교리에 문외한이라 답답함도 없진 않았지만 법상스님의 법문은 불교를 몰라도 들을수 있는 알기 쉽고 친절한 법문이셨습니다. 그리고 듣기 적당한 스님의 억양과 정확한 발음과 듣기 편한 목소리와 좋은 성능의 마이크 등등 정말 법문의 초보자에게 너무도 감사하게 편안한 법문듣기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길을 걷거나 산책하며 들을 때는 스님께서 같이 걸으시며 설법하여 주신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몰입했고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와 잠을 못 이룬 시간에는 스님께서 가까이에서 설해주신다고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법문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스님의 법문 뿐 아니라 스님의 모든 명상과 말씀들 모두를 다 찾아 듣고 또 들으며 온전한 몰입으로 법문과 하나되어 이 세상의 재미보다는 정말 꿀 처럼 달콤하게 떨어지는 스님의 법문은 저를 지옥같은 괴로움에서도 벗어나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잘 때는 법문을 틀어놓고 잠에 들었고 깨어있을 때에도 가능한 모든 시간을 법문듣기에 주력했습니다. 그저 손에는 계속 법문듣는 폰이 들려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듣다보니 오디오클립 앱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 있는 스님의 모든 법문을 세번 이상 들은 것 같습니다. 저에겐 정말 큰 도움이고 보석보다 더 귀한 법문이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빠져들던 어느날 단지 스님의 ‘불교는 다름이 아니라 괴로움의 소멸이에요’ 라는 그 말씀’에 화두가 걸렸습니다. 그 때는 참 다행이도 코로나 시기라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었고 하던 일도 많이 줄어들어서 저에게는 굉장한 행운의 시기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해졌고 가벼워졌으며 삶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사건들이나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대해 수용과 허용, 용서와 이해를 하게 되었으며 내 잘못에대한 인정을 하게 되고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법문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감정이 정화되어갔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감사와 사랑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마음이 짙어졌으며 나를 놓아버리는 여여함의 기쁨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법상스님의 법문을 단 한 말씀을 놓칠까, 단 한 자를 놓칠까 하며 오로지 ‘괴로움의 소멸’ 그 하나의 화두로 저의 발심은 나날이 더욱 무소의 뿔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굳세게 굳세게 쉬지않고 막힘없이 힘차게 힘차게 앞을 내 딛었습니다.
저는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법문에서 들으며 저와는 별개의 불교신자분들만 아시고 원하는 그런것인줄알고 무슨 말씀일까 궁금한 정도였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괴로움의 소멸’ 그 말씀이 저의 믿음을 끌어당겼고 저는 스님의 그 말씀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아.. 괴로움의 소멸이라 하신 그 하늘에서 말씀해 주시는것과 같은 나의 모든것을 걸고 가는 그 화두,, ‘고통의 소멸’ 그 끝이 뭔지는 몰랐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발심은 더욱 더 했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는 한 평생을 거쳐 제가 가장 원했고 제게 가장 필요한 말씀임이 확실했습니다. 이렇게 오로지 법문에 저의 온 존재가 몰입되어 있다보니 어떤 때는 법문을 듣다가 잠이 들었는데 스님의 목탁소리와 똑같이 호흡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며 깨어난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밤낮으로 듣고 또 들어도 법상스님의 법문은 지루함이 없었으며 불타는 화택과 같은 저에게는 들을수록 샘솟는 감로수가 되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로눈물겹게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물건 정리를 하면서도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언제든 법문을 들으며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저의 온 존재로, 온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 해 귀 기울여 그저 들을 뿐 이었습니다.
법문을 듣고있는 그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듣는 그 순간이 감사롭고 정말 그 시간만이 살 것 같았고 들을수록 가볍고 편안하고 삶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무분별지! 처음 들어보는 말씀이었지만 너무도 매력적인 단어였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듣고 또 듣고 들으며 행복하고 그 이상의 지복이 없는듯 좋았습니다.
어느 날! 소소한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귀는 온전히 법문듣기에 열려있었고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조용하게 법문에 귀 기울이고 더 온전히 듣고자 손가락의 움직임조차 멈춰서..법상스님께서 무슨말씀을 하시나.. 아.. 듣고싶다 듣고싶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듣자 듣자.. 뭐라고 말씀하시지.. ?더욱 귀 기울이고 더욱 하나되어.. 숨소리마저 작게 호흡도 조심히 들으려고 하며 귀 기울이며 몸과 마음과 귀가 온전히 법문과 하나되는 그 순간… ..!!
소 뒷걸음질 하다 뭐를 잡게 된다는.. 바로 그 일이 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니 이미 있었지만 모르고 분별심만으로 살아 괴로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던 저의 눈 앞에서 색즉시공이 목격된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적멸이었습니다.
나의 성품을 보았습니다.
내가 무었인지가 드러난것입니다.
이 진리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밖으로만 찾던것이 안으로 돌아서서 나를 본 것 입니다. 모든것이 환영이었으며 불생불멸의 이것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영가현각스님의 증도가 첫구절
군불견!! 이 한말씀에서 증도의 절절한 가슴벅참이 전해집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 눈 앞에서 그대로 목격됩니다.
일체유심조! 불이! 불생불멸!
이것이 바로 ’나‘였던 것 입니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밖을 향해 찾고 갈구하던 내가 나를 향해 돌아서자 밖에 보이던 것은 색즉시공을 드러냈고 마치 생명없는 대충 그려진 평면의 만화와 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공이었으며, 저의 몸도 없고 감정, 느낌, 생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몸이 아니고 생각과 느낌 감정도 아니었습니다. 적멸이었습니다. 나의 성품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진리였습니다. 전체가 오로지 이것 하나 일체유심조였습니다.
나의 고통은 이렇게 소멸되었습니다✨✨
내가 부처, 내가 신, 일체유심조 그 말씀! 바로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나의 성품이 무엇인지가 목격되는것입니다. 일체유심조! 이 전체가 하나인 이것은 바다의 가장 깊은 밑바닥의 전혀 흔들림없는 심연의 진공 상태처럼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하고 안전하고 부드럽고 핵폭탄이 떨어져도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이 진공충전재가 들어간곳에 머무는것 같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고요함에 마취된 듯 하였습니다. 모든것이 멈춘것 같은.. 그렇게 전전긍긍했던 내 육신은 없는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 영원 불생불멸의 이것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었나 했어요. 영만 있는 느낌 일체유심조, 전체, 신의존재, 불생불멸, 그것만이 전체에 가득 찬 하나이고 제가 지각했던 모든것들이 적멸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내가 살아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하며 팔이 움직이면 살은거지 하며 내가 팔을 들려고하니 팔이 올라가고 또 다른 팔을 들려고하니 들리고 너무 신기해서 발을 움직이니 발이 움직였습니다. 걸을 수도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진공묘유 소소영영이 드러나는 이 근원, 하나, 나의 성품, 진리, 고경, 본래면목, 텅빈 충만,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괴로움이 소멸된 진공상태와 같은 바람한점도 느낄 수 없이 지극히 평화로운 고요 이 자리! 이것이 나 입니다. 이것이 부처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불생불멸입니다. 우리모두는 다 그런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요!
그래서 이 순간도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이 명확해집니다.
오는것은 받아들이고 가는것은 놓아주며 열정과 즐거움으로 사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것이 다 없읍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지은2025-02-03 19:38
저도 누군가와 갈등으로 몇년동안 힘들었고 아직도 치유중입니다 그러다 시절인연인지 여기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주변길을 산책하였습니다 스님법문에도 나옴 ^^; 걍 걸었습니다 은근 우리가 모르는 호젓한 산책길,숲길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절이 보임 들어가고 혼자 조용히 산책하고 시간이 맞아 목탁소리가 들리고 스님을 보는것만으로 웃음이 절로났습니다 전 명상하며 기도합니다 저의 이런고민을 해결해줄 스님의 영상을 제눈에 띄게 해달라고 그럼 신기하게도 그 답에 대한 영상을 듣게됩니다
스님법문중 업이 있음 습에 의해 반응하게 된다
이공부는 답답한중에 몰록 깨닫게된다
그렇게 일상을 하되 무위의행을 해라
저도 알음알이라 ㅎ
명상과 산책을 하며 틈틈히 스님의 법문을 듣다보면 시절인연은 올것입니다
좋은것나쁜것도 분별망상
내안의 부처가 나를 가르치기위해 따끔한거도 경험하게 한다합니다 인생의 파도는 때론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합니다
스님법문중 업이 있음 습에 의해 반응하게 된다
이공부는 답답한중에 몰록 깨닫게된다
그렇게 일상을 하되 무위의행을 해라
저도 알음알이라 ㅎ
명상과 산책을 하며 틈틈히 스님의 법문을 듣다보면 시절인연은 올것입니다
좋은것나쁜것도 분별망상
내안의 부처가 나를 가르치기위해 따끔한거도 경험하게 한다합니다 인생의 파도는 때론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늘 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어둠을 밝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법문을 접한것은 3~4년? 정도 된 듯한데 처음부터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 그간의 고민과 갈증들이 모두 일거에 해소됨을 느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불교에 매우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워들은 것도 많고 소위 말하는 알음알이만 가득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수행은 전혀 하지 않았구요)
스님의 법문을 접하고는 '아 이제 고민이나 방황은 끝났구나. 이 스님 말씀만 믿고 가면 된다.' 라는 강력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법문을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습니다. 좀 괴로운 경계가 찾아오면 열심히 찾아 듣다가도
괜찮아지면 곧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제 문제는 머리로 알기만 하고 아무 것도 느끼거나 깨닫지는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삶 속에서의 변화가 미미합니다.
예를 들어 윗 집과의 갈등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는 이미 해결되어 수 개월 전에 마무리되었는데
(저희가 일방적인 피해자이고 망가진 저희 집을 윗 집에서 고쳐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마음이 상해서 이후 윗 집 관련된 작은 일에도 불같은 분노를 숨길 수 없고 어떨 때는 잠을 못 자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가기가 힘듭니다. 머리 속으로는 답을 이미 알고 있죠. 이건 진짜가 아니고 생각일 뿐이다.
괴로워 할 수록 저만 손해라는 점 등 마음 속으로 외쳐보지만 큰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이해' 뿐인 지금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을까요? 스님.
관련된 법문도 검색해서 다시 들어봐도 금방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답답합니다.
계속 계속 계속 법문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믿지만 (그래서 사실은 질문할 필요도 없었지만요^^;;)
아주 작은 힌트라도 바랍니다.
1 유튜브가 아닌 상주에 가서 스님을 직접 뵙고 법문을 들으면 깨달음의 힌트를 얻을까요?
2 법륜스님이 제시해 주는 것처럼 절수행이 도움이 될까요?
3 계속 계속 계속 더 많은 영상법문을 들을까요? (지금은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듣습니다)
4 스님께서 지으신 책중에서 수심결과 마음공부를 2번 읽었습니다. (1년이 넘게 걸렸지만요)
책을 더 많이 읽는게 도움이 될까요?
스님, 불타는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리석은 저를 밝음으로 이끌어 주세요.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