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게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이준호
2023-07-31
조회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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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2023-08-05 11:51
'이 자리', '본성'을 '있다'라고 정해 놓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되겠지요.
이 자리를 분별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체험의 영역이지, 그런 알음알이로 파악하려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 본성은 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없다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늘 있다고 말한 것 또한 방편일 뿐이며, 그런 측면에서 이것을 본래무일물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말로 표현된 것은 온전할 수가 없기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 '본성'은 있다 없다를 넘어서서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의식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지켜보는 자'가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것을 '지켜보는 자'라고 안다면, 그것은 참된 이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알음알이일 뿐입니다.
'지켜보는 자'가 이것이라고 아는 입장에서는, 지켜보는 자가 없을 때 이것도 사라진다고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 수도 없고 모를 수도 없습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있지도 없지도 않지만, 볼 때, 들을 때, 작용할 때 확인됩니다.
늘 있는 이것은 늘 있다고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작용 속에서 확인될 뿐입니다.
'내가' '이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전제로 말하기에, 내가 죽으면 이것도 없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될 뿐입니다.
'나'는 본래 늘 없습니다. 나라는 생각이 나를 있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늘 이것 하나 뿐입니다.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답변을 드리지만, 별 도움이 안 될 것인데요, 머리로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 미진하고 모르겠는 부분을 머리로 확실히 하려고 하지 마시고, 꽉 막혀 모르는 채 발심하여 법문을 듣다가 문득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를 분별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체험의 영역이지, 그런 알음알이로 파악하려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 본성은 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없다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늘 있다고 말한 것 또한 방편일 뿐이며, 그런 측면에서 이것을 본래무일물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말로 표현된 것은 온전할 수가 없기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 '본성'은 있다 없다를 넘어서서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의식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지켜보는 자'가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것을 '지켜보는 자'라고 안다면, 그것은 참된 이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알음알이일 뿐입니다.
'지켜보는 자'가 이것이라고 아는 입장에서는, 지켜보는 자가 없을 때 이것도 사라진다고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 수도 없고 모를 수도 없습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있지도 없지도 않지만, 볼 때, 들을 때, 작용할 때 확인됩니다.
늘 있는 이것은 늘 있다고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작용 속에서 확인될 뿐입니다.
'내가' '이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전제로 말하기에, 내가 죽으면 이것도 없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될 뿐입니다.
'나'는 본래 늘 없습니다. 나라는 생각이 나를 있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늘 이것 하나 뿐입니다.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답변을 드리지만, 별 도움이 안 될 것인데요, 머리로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 미진하고 모르겠는 부분을 머리로 확실히 하려고 하지 마시고, 꽉 막혀 모르는 채 발심하여 법문을 듣다가 문득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준호2023-08-06 08:52
감사합니다. 스님. 시간내서 답변해주시니. 그런데 답변을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 머리로는 이해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법문 열심히 듣겠습니다. 저도 스님이 확인한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너무 궁금하거든요.
최영목2024-01-25 18:24
스님께서 잘 설명하였다고 봅니다.
스님글 중,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만도 보통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말씀에 제가 덧칠을 한다면 앞에 "있지도 않다"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부정이며, 뒤의 "없지도 않다"는 연기된 마음은 있음을 표현한것이리라 망상을 피위봅니다.
그리고 학인들의 공부를 위해서 게시글을 비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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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글 중,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만도 보통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말씀에 제가 덧칠을 한다면 앞에 "있지도 않다"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부정이며, 뒤의 "없지도 않다"는 연기된 마음은 있음을 표현한것이리라 망상을 피위봅니다.
그리고 학인들의 공부를 위해서 게시글을 비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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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질문 한번 드렸다가 답변듣고 한 6개월이상 강의를 들었던것 같습니다. 그 전에도 좀 듣기는 했지만서도요.
근데 제가 요즘 의문점이 생겼네요. 강의에 의하면 이 몸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하셨죠. 온 우주가 하나의 마음이며 그것이 진짜 본성이다
대략 이렇게 요약될수 있겠는데요. 근데 아무리 봐도 이 몸을 떠나서 뭘 할 수 있는지가 이해가 안 되네요. 분명한건 의식은 몸에 의존해있죠. 몸이 사라지면 의식도 사라지고 그 지켜보는 그 자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불이법에서는 그 도는 항상하며 사라지지 않고 불생불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지켜보는 자는 의식이 사라지면 사라지지 않나요? 불이법에 의하면 그 도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태어나기전에 그 지켜보는 자를 느끼셨나요? 거기에는 의식이 없으니 그 지켜보는자도 없는거 아닙니까? 그러면 불이법이 아니라 그 지켜보는 자는 유기체로서 혹은 의식이 있는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것이니 이상하지 않나요? 다른 강의들을 들어봐도 그 모든 분별을 지켜보는 그게 있다고 하는데 그건 살아있을때만 의식이 있을때만 존재하는거 아닌가요? 식물인간 혹은 전신마취(저도 경험 있음)를 하면 여러분은 자신이 식물이간이구나 마취가 되어 누워있구나 그 지켜보는 자를 감지 하시나요? 못하죠. 의식이 없으니. 아무리 봐도 이 도라는거 깨달음이라는건 우리가 지금 꿈을꾸고 있는 살아있는 이떄에 효용가치가 있는것이지 존재하지 않고 소멸하면 아무 실익이 없는거 아닌가요?
그래서 초기 경전에 부처가 장작불의 비유를 들면서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에 장작이 타면 불도 사라진다라는 간단한 말로 답변하신것 같은데. 죽으면 소멸했으므로 고라는걸 논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일축하신듯한데. 고라는것은 유기체로서 존재할때만 있는 일신전속적인 거잖아요. 무생물에는 고가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지켜보는 자는 의식에 의존해있고 그 의식은 육체에 의존해있는듯한데 어찌 이 도가 육체를 벗어나고 의식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감지할수있다고 하시는지. 그건 우리가 살아있기때문에 느껴질수있는 그런거 아닌가요? 소멸했는데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 지켜보는 자를 느낄수가 없는데 그런 실제 그게 그 비존재의 세계에서도 지켜보는 자로서 있는게 맞습니까? 이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데요...강의에서 답변해주셔도 좋고 여기에 답변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