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숲향
2024-05-29
조회수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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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2024-06-06 16:35
선불교는 '내가 무엇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그동안 내가 나라고 알고 지내왔던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님을 문득 깨닫는 공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머리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머리로 알 수 없으니, 좌절되고, 절망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어떻게도 머리를 굴릴 수가 없고,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 공부는 방법이 없다고 하니, 어떤 방법도 써 볼 도리가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꽉 막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보고 '화두가 들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고, 이것을 간화라고도 합니다.
방법도 머리로 알 수도 없으니, 콱 막힌 심정으로, 그러나 깨닫고는 싶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그저 직지인심하는 법문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마치 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무 손 쓸 수도 없이, 그저 모를 뿐이니, 답답해 미치겠다고도 하고, 콱 막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 자세가 좋은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로 꾸준히 오래 오래 간절한 발심을 내어 법문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확인하는 때가 옵니다.
화두가 타파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집착은 내려놓아 지게 됩니다.
억지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인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저절로 집착이 내려놔 지는 것이 진짜죠.
그러나 그것을 머리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머리로 알 수 없으니, 좌절되고, 절망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어떻게도 머리를 굴릴 수가 없고,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 공부는 방법이 없다고 하니, 어떤 방법도 써 볼 도리가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꽉 막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보고 '화두가 들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고, 이것을 간화라고도 합니다.
방법도 머리로 알 수도 없으니, 콱 막힌 심정으로, 그러나 깨닫고는 싶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그저 직지인심하는 법문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마치 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무 손 쓸 수도 없이, 그저 모를 뿐이니, 답답해 미치겠다고도 하고, 콱 막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 자세가 좋은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로 꾸준히 오래 오래 간절한 발심을 내어 법문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확인하는 때가 옵니다.
화두가 타파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집착은 내려놓아 지게 됩니다.
억지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인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저절로 집착이 내려놔 지는 것이 진짜죠.
안녕하세요~~
스님 1년 넘어서 오랜만에 상담글을 남기네요.
법문을 펼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스님 법문을 꾸준히 들으면서 느낀점이
스님의 법문이 정말 리얼한거 같습니다~~
제가 목탁소리 홈페이지 상담게시판 질문 3번 올리고
그림약도 봉사 한번과 작년 3월 법회 마치고 2~3분 이야기 한 인연이 전부인데,
유튜브 법문들을때 종종 제 이야기같이 느껴질때가 있더라구요^^
긴것만 보면 뱀같다 느껴 질때가 있는것처럼
참 특별한 경험이었네요.
스님의 분별할수 없는 법문에 수희찬탄합니다.
오랜만에 궁금한점이 있는데요.
간화선, 참선, 화두가 같은 말인가요?
그리고 선불교가 알수없는 막막함속에
계속 막막하게 만드는 법문인가요?
그러면 계속 막막하면 그 화두는 언제 끝이 날까요?
지혜 없이 그냥 가만히 막막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풀릴까요?
옛날 수행자들이 이 어려운 수행을 하면서 의단이 되면 공부가 잘 된다고 하는데
영화보니깐 정말 어렵게, 어렵게 수행하시는 모습이 연출 되던데
안타깝더라구요.
그 막막함속에서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 그런시간들은 언제 오는지?
아마, 개인차가 있겠죠~~ 위 내용들이 궁금합니다.
전 불교의 수행목적이 집착을 내려놓는거 였거든요.
스님 법문 듣고 집착을 알아보고 조금씩 내려지고 있네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