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우주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과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 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우주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과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 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